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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북한에 줘야할 돈은 1백억달러

90년 김일성-가네마루 회담때 거론, 17일 정상회담 최대관심사

일본언론 보도에 따르면, 북한과 일본은 오는 17일 양국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중 하나인 일제 식민지배 및 전후 보상문제와 관련, 상호 재산청구권을 포기하고 한·일수교 당시와 같은 경제협력 방식으로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이같은 합의는 지난 7~9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당국자간 사전협의에서 확정됐다.

이번 합의는 북한이 그간 일관되게 식민지배 등에 대한 보상을 요구한 반면, 일본은 경제협력 방식을 주장해 왔다는 점에서 볼 때 큰 진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양국의 최대관심사는 과연 일본이 경제협력 방식을 통해 북한에 배상할 금액이 얼마나 될 것인가로 쏠리고 있다.

지난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서 양국이 합의한 공여액은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 등 총 5억달러였다. 이 기준에 기초해 그후 37년의 세월이 흐르며 돈가치가 바뀐 점을 감안하면, 배상액은 1백억달러 정도가 돼야 합리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 견해다.

***90년 가네마루·김일성 회동때 1백억달러 배상금 문제 첫 거론**

'1백억달러'라는 액수가 대일배상금 액수로 맨처음 수면위로 떠오른 것은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지난 1990년의 일이다.

1990년 9월 지금은 고인이 된 가네마루 신(金丸信) 자민당 부총재가 다나베 마코토 사회당 위원장과 함께 평양을 방문, 김일성 주석과 회담을 갖고 북일수교 협상을 조속히 진행한다는 요지의 북한의 노동당·일본의 자민당·사회당 3당 공동 합의문을 발표했다. 가네마루는 당시 일본 자민당을 막후에서 쥐락펴락하던 이른바 '암장군(暗將軍)'이었다.

당시 일본언론들은 북한과 일본 사이에 수교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으며, 이 과정에 북한에서 제시한 배상금 액수가 최소한 1백억달러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일본언론들은 또한 가네마루가 1백억달러라는 액수에 크게 연연해 하지 않는 분위기였으며, 단 하나 배상방식은 한·일수교때와 마찬가지로 경제협력 방식을 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따라서 배상금은 50억~1백억달러 사이에서 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당시의 지배적 관측이었다.

***일본 재계와 정치권의 북일수교협상 노림수**

일본언론들은 이같은 가네마루의 탄력적 대응의 원인을 일본 재계와 정치권의 '이해일치'에서 찾았다.

가네마루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동행한 이들은 미쓰이, 니시마트, 시미즈, 미에다 같은 일본 대기업의 중역 간부들이었다. 이들은 짧게는 북일 수교협상시 북한이 받게 될 거액의 경제협력금을 노리고 있었고, 길게는 한반도 및 만주와 시베리아, 연해주를 잇는 거대한 동북아 경제권을 선점하겠다는 속셈을 갖고 있었다. 더욱 당시 일본은 부동산 거품의 극성기로, 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은 마땅한 대출처를 찾지 못해 부심하고 있던 처지였다. 이런 마당에 1백억달러의 경제협력 프로젝트는 여간 탐나는 신사업 영역이 아닐 수 없었다.

정치권의 이해관계도 일치했다. 금권정치가 지배하는 일본 정치권의 주된 수입원중 하나가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정부개발원조(ODA)자금 및 전후배상금을 일본 대기업들에게 분배하는 과정에 얻는 리베이트였다. 요컨대 개도국 지원이나 배상금 형태의 경제협력 과정에 일본 대기업들에게 건설 프로젝트 등을 분배하는 대신 정치자금을 얻어쓰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당시 일본 언론들은 가네마루가 대북 진출을 노리고 있는 일본 대기업들과 손을 잡고 정치자금을 뒷거래하고 있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1991년 10월23일 재미동포 실업가 박경윤씨가 주선한 전세기편으로 평양에 날아간 방북 시찰단도 다름 아닌 일본 대기업 중역들과 가네마루의 대북창구 실무자로 알려진 노나카 히로무 일본 중의원 의원이었다. 가네마루를 정점으로 하고 다나베와 박경윤씨를 창구로 삼은 일본의 대북교섭 추진에 가속도가 붙으며 북일수교가 가시권에 들어오는 듯 싶었다.

그러나 이같은 북일 수교협상은 동북아지역에서의 유일패권이 위협받을 것을 우려한 미국이 지난 93년 이른바 '북핵 위기설'을 제기하면서 전면중단됐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북일 수교협상이 시작된 것이다.

***북일협상의 최대 걸림돌은 일본의 심각한 재정적자**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오는 17일 북한을 방문해 하루동안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두차례 회담만 갖고 당일 귀국할 예정이다.

고이즈미의 짧은 일정을 볼 때 과연 이번 협상에서 과연 배상금 규모에까지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는 게 일본언론들의 일반적 전망이다. 그러나 전후배상을 '경제협력' 방식으로 한다는 최소한의 합의는 도출되고, 구체적 배상액수는 추후 실무협상을 통해 정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문제는 최고 1백억달러에 달할 경제협력을 할 여력이 과연 지금 일본에게 있느냐이다.

가네마루 신이 협상을 주도하던 지난 90년대초와는 달리 지금 일본은 만성적 경기침체와 악성 재정적자로 고통받고 있다. 따라서 한·일수교협상의 기준에 따라 배상금의 60%를 무상 경제원조 형태로 지원한다 할지라도, 1백억달러를 배상한다고 가정할 경우 그 액수는 60억달러에 달하는 만큼, 이는 재정적자로 고민하는 일본 정부 및 의회로서 수용하기 쉽지 않은 거액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재계와 정치권의 이해관계는 10여년과 마찬가지로 일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지금 일본 정치권과 재계의 이해관계가 90년대초 북일수교협상 추진당시와 마찬가지로 일치한다는 대목에서 협상진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기도 하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지가 9일(현지시간) 지적했듯, 고이즈미 총리는 지금 북·일수교에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있다. 2001년 4월 취임후 다섯달 동안 80%를 웃돌던 고이즈미의 최근 지지도는 40%대로 곤두박질쳤다. 이렇게 급락을 거듭하던 지지율이 북일 정상회담 개최후 51%로 회복됐다. 북일수교를 통한 국제적 리더십 제고에 상당수 일본인들이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고이즈미 등 일본정치권은 북일수교시 진행될 경제협력사업 과정에 얻게될 리베이트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재계의 이해관계도 일치하고 있다. 일본의 건설업체등 재계는 지금 신규투자처를 찾지 못해 고심중이다. 이런 마당에 1백억달러대의 신규투자처가 출현한다는 것은 일본 재계에게 가뭄속의 단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건설업체 등 일본기업의 고전에 따른 부실채권 처리 문제로 동반몰락 위기에 직면한 일본 금융기관들에게도 북한이란 신천지의 등장은 반가운 소식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견제가 최대 걸림돌**

이같이 일본 정치권과 재계는 북일수교를 자신의 잣대로 이해관계를 재며 상당히 적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북한도 일본으로부터 거액의 배상금을 받게 될 경우 경제회생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 협상에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주된 경제지원국이던 남한이 정권교체기를 맞아 차기 정권이 어떤 대북정책을 취할 것인지가 불투명한 현상황인 만큼 일본으로부터 받게 될 배상금에 큰 기대를 거는 눈치다.

하지만 과연 북일수교 협상이 이런 양국의 이해관계만 갖고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북일수교 협상을 의구심 어린 눈초리로 예의주시하고 있는 미국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북일 양국에게는 과거 90년대초 한창 무르익었던 북일수교협상이 미국의 '북핵 의혹' 제기로 무산됐던 뼈저린 실패의 경험을 갖고 있다. 더욱 현재 조지 W. 부시 미대통령은 북한을 여전히 '악의 축' 국가로 규정, 감시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한반도를 중심축으로 지금 치열한 '고공외교'가 진행중이다. 차기집권을 꿈꾸는 정치권의 각 정파들도 국익적 차원에서 동북아에서 펼쳐지고 있는 일련의 파노라마를 예의주시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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