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 입장 경청하기] 조선의 종군위안부 (5) > Communication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상대방 입장 경청하기] 조선의 종군위안부 (5) > Communication

회원로그인

회원가입
img

Communication

한일갈등타파연대

[상대방 입장 경청하기] 조선의 종군위안부 (5)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일갈등타파연대 작성일 24-09-02 06:40

본문

 [7 : 이런 위안부 이야기를 믿으십니까?]

 

199232일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이 문제의 한일교류집회가 열렸는데, 적기(赤旗)에 게재된 종군위안부 심미자의 이야기에 따르면(요시카와 하루코 저 종군위안부20쪽에서 인용),

 

1940(1940) 16세 때 학교에서 담임 일본인 선생님으로부터 일본지도를 자수, 수놓기하라는 지시를 받고 제출하였다고 한다. 며칠 후 경찰 간부로부터 일본의 국화는 벚꽃인데 나팔꽃을 '자수'하고 있는 것은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말을 듣고 경찰에 연행되었다. 숙직실에서 그 경찰관에게 강간을 당했고, 저항하자 보복으로 '구운 쇠꼬챙이'로 왼쪽 어깨를 태워 버렸다. 그 상처는 지금도 남아 있다. 정신을 잃고 깨어나니 후쿠오카에 있었다. 그리고 종군위안부가 되었다.

 

[8 : 위안부 이야기의 검증 ]

(8-1, 관부 연락선의 경비 상황)

앞서 언급한 니시노 유미코의 저서에는 대동아전쟁이 시작된 후 시모노세키 경찰서의 경위(경비가 아닌)과장을 맡고 있던 특고 경찰관 이시다 노조미에게 인터뷰한 이야기가 있다.(78페이지 참조)

 

특고경찰이라는 것은 사상경찰로서 언행을 관찰하고 소지품을 조사하는 것이었다. 아주 엄혹한 시기였기 때문에 조선에서 배를 타고 오는 조선인들도 조사했죠. 저도 배를 탔어요. 소지품 검사에 걸렸어요. 어떤 책을 가지고 있는지, 마르크스 책은 없는지, 폭탄 같은 걸 가지고 있지 않은지 살펴본 거죠. 배에는 시모노세키의 특고뿐만 아니라 조선의 부산 경찰도 타고 왔다. 매일 배를 타고 갔다.

 

(8-2, 실신 시간의 길이에 대하여)

현재 한국의 부산과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 사이를 운항하는 고속선을 제외한 관부(関釜) 페리 2개사(일본과 한국 회사)의 소요시간은 13시간 반~14시간이지만, 64년 전에는 이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그 항해시간에다 사건 현장에서 부산항까지의 이동시간과 승하선 시간, 그리고 하선지인 시모노세키에서 후쿠오카까지의 이동시간을 더한 시간은 적게 잡아도 30시간 이상 걸렸을 것이다. 그 시간 동안 강간을 당한 피해 여성은 계속 기절해 있었을 텐데, 그런 일이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헤세이 1611월에 그룹 대표이자 와세다 대학생이었던 와다 신이치로(和田真一郎)가 징역 14년의 실형에 처해진 이벤트 서클 서퍼 프리에 의한 여대생 집단 강간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에서도 술을 마시고 강간당한 피해자들은 이렇게 오랫동안 정신을 잃은 것은 아니었지만, 심미자의 이야기는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일본에 온 과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명백한 거짓말이 있었다는 것이다.

 

(8-3경계, 검문, 검열을 빠져나가다)

더구나 경찰관의 엄격한 경계 하에 기절한 채로 16세 여성을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잇는 관부연락선의 승선 시, 선내, 하선 시 엄격한 검문을 빠져나가 후쿠오카로 이송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이상에서 합리적으로 판단해 볼 때 그녀가 말한 내용이 허위 날조된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물들어 정상적인 판단력이 결여된 참의원의 저자는 한심하게도 그 거짓말을 간파하지 못하고 조금의 의심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이 책뿐만 아니라 한국 내 반일 사상의 영향을 받아 일본군이 주둔한 적이 없는 지역에서도 종군위안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다.

 

일본인의 의뢰로 한국 여성이 매춘부(종군위안부)가 되었다는 체험담을 이야기하면 그 내용에 대해 거짓말인지 진실인지 판단, 검증도 하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게, 무비판적으로, 귀신의 목을 베듯 기뻐하며 강제연행 되어, 강제로 매춘부가 되었다라는 줄거리를 머릿속으로 믿는 일본인이 많이 있다.

 

'종군위안부 이야기의 선전 협력자'의 대부분은 요시다 세이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정치적 목적의 '선전'에 이용하려 했던 반일 좌익주의자들이었다.

 

인권 운운하는 것이라면 그들이 말하는 종군위안부에는 일본 여성도 많았지만, 일본인 매춘부의 인권에 대해서는 반일 좌익주의자들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들이 주장하는 인권이란 그 정도의 수준, 내용인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한일갈등타파연대

대표이메일 : [email protected]
Copyright © 한일갈등타파연대.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