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 입장 경청하기] 조선의 종군위안부 (3) > Communication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상대방 입장 경청하기] 조선의 종군위안부 (3) > Communication

회원로그인

회원가입
img

Communication

한일갈등타파연대

[상대방 입장 경청하기] 조선의 종군위안부 (3)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일갈등타파연대 작성일 24-09-02 06:36

본문

[4: 위안부를 찾기 위한 한국 방문]

 

일본이나 일본군에 종군위안부 강제성(노예 사냥)의 책임을 반드시 물으려는 신념을 가진 좌파 반일 그룹이, 재판 원고를 찾기 위해 한국으로 위안부를 찾으러 다녔다. 일본을 비방하기 위해 어떤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한국의 주장에 따르면, 7~20만 명의 종군위안부가 존재했어야 했지만, 그들을 찾지 못해 결국 힘들게 찾아낸 사람이 김학순이라는 일본군을 상대로 매춘을 했던 경력을 가진 여성이었다. 그녀가 원하지 않음에도 많은 돈을 주고 일본으로 데려와, 종군위안부 재판의 첫 번째 원고로 세웠다. 그러나 법정에서 밝혀진 그녀의 경력은 다음과 같았다.

 

(4-1, 첫 번째 원고의 이야기)

김학순은 1923(대정 12)에 태어나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를 4년 만에 중퇴하고, 14세에 양부에게 40엔에 기생(기생이라 불리는 공창, 매춘부)으로 팔렸다. 1939(쇼와 14), 19세에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양부에게 이끌려 중국으로 건너갔다. 철벽진에서 양부와 헤어진 후 위안소에 들어가, 일본군 병사를 위한 성 서비스를 강요당했다. 군의 검진도 받았다고 한다. 같은 해 가을, 알게 된 조선인 상인()에게 부탁해 탈출했고, 여러 지역을 전전한 끝에 상하이에서 부부가 되었다. 프랑스 조계에서 중국인을 상대로 전당포를 운영하며 생활했고,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종전 후 이듬해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한국전쟁 중 남편은 사고로 사망하고, 자녀들도 병으로 죽은 뒤 한국 곳곳을 떠돌며 술과 담배에 의존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의지할 사람이 없어 정부로부터 생활 보호를 받고 있으며, 인생의 불행은 군 위안부로 강요당한 것에서 시작되었으니, 일본 정부는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의 내용을 보면 그녀의 인생에는 동정할 부분이 많지만, 이 이야기가 이른바 강제로 끌려갔다고 주장하는 종군위안부 재판의 첫 번째 원고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일본 정부는 도대체 무엇에 대해 사과해야 하는 것일까? 가난한 부모에게 40엔에 팔린 딸이 매춘부로 살고, 후에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일본군을 상대로 매춘한 것뿐이다.

 

(4-2, 재판 결과, 강제 연행이 부정되다)

이러한 사례는 조선뿐 아니라 전전戰前의 일본 농촌에서도 어디에나 있던 이야기였다. 일본인 매춘부들도 국내외에서 군인을 손님으로 받았던 경우가 있었는데, 그것을 두고 정부가 책임을 지고 사과나 보상을 해야 한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김학순의 경우, 국가나 군대에 의한 물리적 강제가 전혀 없었다는 점은 재판소의 판단으로도 명백해졌다. 반일 좌익주의자들과 일부 편향된 언론은 종군위안부에 대한 '물리적 강제'가 재판에서 부정되자, 그다음에는 심리적 강제가 있었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자발적으로 매춘부가 되는 사람은 거의 없고, 거기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일본의 가난한 농촌 딸들도, 한국의 김학순도 매춘부가 되는 데 심리적 강제가 있었을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책임은 그녀들을 돈을 위해 팔아넘긴 부모나, 인신매매를 알선한 중개자와 매춘업주에게 있으며, 그들 중 대부분은 조선인이었다. 따라서 책임을 물어야 할 대상은 고용주가 아닌 일본군이나 국가가 아니라, 부모를 포함한 조선인의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4-3, 유가족회 간부와 아사히신문 기자의 연결)

한국에서 '태평양 전쟁 피해자 유가족회'라는 단체가 있는데, 그 상임이사였던 양순임이라는 여성의 딸이 아사히신문 기자인 우에무라 다카시와 결혼했다. 또한, 이 위안부 문제를 주로 다루었던 사람이 바로 우에무라 기자였습니다. , 장모가 제기한 김학순의 재판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양부에게 기생으로 팔린 딸을 강제연행 되었다고 조작한 기사를 쓴 것이다.

 

즉 장모가 제기한 앞서 언급한 김학순의 재판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양아버지에게 기생(공창)에 인신매매된 딸을 강제연행 됐다고 날조된 기사를 썼다는 것이다. 니시오카 츠토무가 양 씨를 만나 질문하자 딸이 아사히신문의 우에무라 다카시와 결혼한 사실을 인정했다. 진실을 보도해야 하는 언론인으로서 허위사실을 보도한 것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한일갈등타파연대

대표이메일 : [email protected]
Copyright © 한일갈등타파연대.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