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 입장 경청하기] 한국의 역사 교과서. 역사를 도구로 사용하는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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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일갈등타파연대 작성일 24-08-29 13:38본문
4. 민족 말살이라는 거짓말
"일제는 우리 민족과 민족 문화를 말살하는 정책을 실시했다"(162쪽)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한국의 학생들이 이 문장을 읽으면, 마치 나치 독일이 600만 명의 유대인을 말살한 것처럼, 일본이 조선 민족을 말살하려 했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일본인 입장에서 명백한 거짓말이 버젓이 기록된 것입니다.
아마도 '강제 연행'이나 '종군 위안부' 문제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조선 반도 주민을 말살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는 사실은,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이 가져온 문명 개화, 인구 증가, 인프라 정비, 그리고 세계적으로 드문 의무 교육을 포함한 교육 제도를 통해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은 식민지 주민에게 대학 교육의 기회까지 제공하였습니다. 이는 조선 민족을 말살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음을 보여줍니다.
5. 원정에 대하여
'원정(元寇)'의 '寇'는 '적'이나 '침략자'를 의미합니다. 원정에 대해 잘 모르는 젊은 세대를 위해 설명하자면, 중국 대륙을 정복한 징기스칸의 손자인 원(元)나라 황제 쿠빌라이가 북경에 수도를 정하고 일본에 조공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이를 거부하자, 쿠빌라이는 일본에 대한 침략을 계획했습니다.
가마쿠라 시대 문영 11년(1274년)과 홍안 4년(1281년)에 고려와 협력하여 일본을 침략했고, 이키 섬과 쓰시마 섬 주민들을 학살하며 규슈의 하카타에 상륙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측의 격렬한 저항과 태풍으로 인해 철수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국정 교과서에 따르면,
5-1. 침략자의 한국을 피해자로 둔갑시키기
"고려는 원나라와 화친을 맺고 개경으로 환도했으나, 곧 새로운 시련에 직면하게 되었다. 원나라는 일본을 정벌하기 위해 군선의 건조, 병량의 공급, 병사의 동원을 고려에 강요했다. 이렇게 하여 두 차례에 걸친 고려-원 연합군의 일본 원정이 단행되었으나, 모두 실패로 끝났다." (138쪽)
이 국정 교과서는 '일제의 침략'이라는 표현을 빈번하게 사용하면서도, 원정에 대해 서술할 때는 자국(고려)이 일본을 침략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침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한국의 역사 교과서임에도 불구하고, 불리한 부분에서는 중국의 원나라를 주어로 사용하여 사실을 흐리는 수법을 취했습니다.
이 교과서의 의도는 고려가 원나라에 강요당해, 즉 자발적인 의지가 아닌 강제적인 협력자로서 일본을 공격하게 되었고, 따라서 침략자가 아니라 피해자라는 주장을 은근히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또한, '정벌(征伐)'이라는 단어는 악인을 공격하여 평정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 한국은 일본 교과서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정벌'이라는 표현이 있는 것에 대해 반발하며, '정벌'이라는 단어 사용을 문제 삼아 항의했고, 이를 계기로 교과서가 수정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자국의 일본에 대한 침략을 '정벌'로 표현하며 교과서에서 공개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6. 고려가 일본 침략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증거
고려의 왕 원종(재위 1260~1274년)에게는 아들 심(諶, 후의 충렬왕)이 있었습니다. 심은 몽골 제국 원(元)나라의 황제 쿠빌라이(1215~1294년) 밑에서 오랜 시간 원나라에 거주하며, 쿠빌라이의 딸과 결혼한 후 고려로 돌아와 충렬왕(1236~1308년)으로 즉위했습니다. '충렬'이라는 이름은 원나라에서 받은 것으로, 충(忠)은 원나라에 대한 충성을 의미합니다. 원정 당시 고려의 왕이 바로 충렬왕이었습니다.
6-1. 자국 역사서에 있던 기록
고려사 원종 13년(1272년) 3월의 기록에 따르면, 심(후의 충렬왕)이 쿠빌라이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일본은 아직 황제 폐하(쿠빌라이)의 덕으로 인도되지 않았습니다. 폐하께서 명령을 내려 군대를 정비하고 전함과 병량을 사용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만약 이 일을 저에게 맡겨주신다면, 심력을 다하여 폐하의 군대를 조금이라도 도울 것입니다."
이 기록을 보면, 원나라에 강요된 것이 아니라, 명백히 고려의 충렬왕 자신이 쿠빌라이에게 일본 원정을 부추기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협력하겠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국의 역사 기록조차 왜곡하는 한국의 국정 역사 교과서가 얼마나 기만적인지를 이로써 알 수 있습니다. 혹은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한문을 읽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6-2. 이에 관한 원나라 역사서의 기록
이 사건에 대해 중국 측 원(元) 왕조의 기록을 인용하면, 원나라 역사서인 세조(쿠빌라이) 본기, 지원 19년(1279년, 즉 '홍안의 역'이 일어나기 2년 전) 7월의 기록에 따르면,
"고려 국왕이 직접 배 150척을 건조하여 일본 원정을 돕겠다고 요청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사례만으로도 한국의 역사 교과서가 얼마나 왜곡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는지 충분히 증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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