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 입장 경청하기] 한국의 역사 교과서. 역사를 도구로 사용하는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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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일갈등타파연대 작성일 24-08-29 13:40본문
10. 일본의 경제 지원과 기술 지원을 무시한 한국의 교과서
위에서 언급한 일본의 막대한 경제 지원과 기술 협력에 대해 한국의 국정 역사 교과서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을까요?
한국 정부는 1962년부터 경제 개발 5개年 계획을 수차례 추진하며, 수출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경제 개발 계획의 추진은 빈곤에서 벗어나고, 뒤처진 경제 사회 분야를 발전시키며, 자립 경제를 달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외국 자본을 도입하여 많은 공장을 건설하였고…(387 페이지)
경제 및 산업 개발에 관해서는 일본이라는 단어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외국'이라고만 적었으며, 일본으로부터 기술 이전을 요청하고 일본에서 기술을 도입한 사실에 대해서는 한 글자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즉, 자금은 외국(일본)에서 빌렸으나, 스스로의 기술로 개발했다는 허위 교육을 학생들에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 쓴 것처럼, 한국인들은 좋은 것은 전부 자신들의 공로로 하고, 나쁜 것은 모두 외국이나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민족적 나쁜 습관을 가진 국민입니다. 포항제철소를 제로에서 시작하여 한국인들에게 고로의 건설과 제철 기술 지도를 장기간 수행한 신일철의 기술자들도, 한국인들로부터 감사의 말을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실을 왜곡하고 거짓으로 덮은 교과서에서 교육을 받은 한국의 젊은이들은 포항제철소의 자랑을 하더라도, 그것이 일본의 경제 및 기술 지원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전혀 모르며, 사실의 지적에 대해서는 망언이라고 대답한다고 합니다.
반면 일본에서는, ‘1. 역사 도구로 사용하기’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종군 위안부의 거짓을 교과서에서 가르치지만, 한국의 전후 산업 경제 발전에 일본이 크게 기여한 사실을 일본 교과서에서는 전혀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 여러분은 의문을 느끼지 않으시나요?
11. 조선 민족으로서의 반성의 결여
한국의 역사 교과서를 다 읽고 나서 느낀 것은 일본의 공로를 무시하고 철저히 냉혹하고 무자비한 '가해자'로 몰아붙이며, 반면에 자신들은 일제의 지배에 저항하고, 목숨을 걸고 국가의 독립을 도모하며, 국가를 발전시킨 씩씩한 '피해자'로 위치 지어 역사를 허위와 왜곡된 애국심으로 꾸며 놓았다는 것입니다.
교과서의 서술에 따르면, 만약 조선이 예로부터 훌륭한 국가였고 다수의 영웅과 의사가 출현하며 우수한 문화를 가진 국민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왜 400년 동안 중국의 속국 지위에 만족하며 시대착오적인 중화사상을 믿고, 국가의 근대화를 게을리 하며, 주변 국가들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빈약한 국가로 경시되었으며, 결국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게 되었을까요?
이러한 상황을 초래하고 굴욕을 안긴 원인의 규명과 그에 대한 조선 민족으로서의 반성이 이 교과서에는 완전히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일본에 대해 자주 입에 올렸던 과거 역사에서 배우려 하지 않고, 과거를 직시하지 않는 행위의 또 다른 예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12. 한국 역사 교과서가 허위를 가르치는 진짜 이유
명확히 말하면, 고대사에서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고구려의 비극을 제외하고는 조선 반도에는 국민이 자랑할 만한 역사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역사서에 대해서도 12세기 이전에는 역사서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일본에 불교 문화를 전한 것 또한 한국인은 일본서기(720년 성립)의 기록을 통해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겐지모노가타리》와 같은 10세기 말의 민족 문화 전통에 기반한 고전 문학도 조선 반도에는 없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중국에 복종하였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정벌을 받았으며, 그 후 400년 동안 명나라와 청나라의 속국 지위에 만족하였고, 자력으로 국가의 근대화를 이루지 못해 제정 러시아의 침략을 받았으며, 자력으로 독립을 유지하지 못해 국제적 승인의 하에 일본과의 합병을 당한 진실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일본의 패전으로 인해 자력으로 독립을 이룬 것이 아니라, ‘선물처럼’ 독립이 주어진 진실의 역사는 한국인에게는 굴욕적인 역사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꾸미고 자존심을 만족시키며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진실과는 크게 다른 조작된 왜곡된 허위의 역사를 국정 교과서에서 학생들에게 열심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일본보다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또는 애국심을 위해서라면 어떤 허위를 붙여도 상관없다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13. 교과서 문제에 대한 향후 대응 방안
교과서 문제에 대한 대응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역사 교과서에서 어떻게 가르치는가는 각 국가의 내정 문제로 간주하고, 한국의 항의나 수정 요구에 대해 내정 불간섭 원칙을 내세워 단호하게 거부하는 것입니다.
*㈜ 내정 불간섭 원칙은 한 국가의 내정 문제는 해당 국가의 자유에 맡겨져 있으며, 다른 국가는 이를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국제법상의 원칙입니다.
역사 인식에 대한 문제도 국가에 따라 역사에 대한 인식이 다를 수밖에 없으며, 예를 들어 한국 전쟁에 대한 인식 하나를 보더라도, 중국의 교과서에서는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정의의 전쟁으로 묘사되는 반면, 한국에서는 침략 전쟁으로 간주되어 완전히 엇갈립니다. 한국이나 중국이 주장하는 역사 인식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들의 역사관을 일본에 강요하려는 것에 불과합니다.
유럽의 격언 중에 “정의는 국가 수만큼 존재한다”는 것이나, “한 나라의 영웅은 다른 나라에서는 침략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기원전 356~기원전 323)이나 나폴레옹 1세(1769~1821) 등을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오사카의 텐노지 구에 살던 일본인 원 다카아키(당시 43세)가 미야자키 해안에서 납치된 후, 본인으로 가장하여 북한의 스파이로 일본과 한국에서 스파이 활동을 하다가 한국에서 체포되어 사형 판결을 받은 신광수(신강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스파이의 상호 교환으로 북한에 돌아간 후, 영웅으로 대우받아 국가 훈장 1급을 수여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에 의해 납치된 원 씨는 여전히 행방불명입니다. 북한과의 국교 정상화 이후 북한의 국민 정서를 고려하여, 납치범인 신광수(신강수)를 북한과 마찬가지로 영웅 대우할까요?
두 번째 방법으로는 일본도 공격적으로 나서서, 한국의 역사 교과서에서의 허위와 오류를 철저히 지적하고, 외교 협상에서 공식적으로 수정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일본이 단호한 태도로 수정을 요구하고, 반복적으로 주장함으로써 무의미한 수정 요구와 비난의 응징 전쟁이 계속될 수 있겠지만, 한국에게 국제적으로 왜 내정 불간섭 원칙이 존재하는지, 그 존재 이유를 깨닫게 하고, 상대의 내정 문제에 간섭하는 것의 어리석음을 한국에 알리는 것입니다.
일본의 교과서 제작에 있어서는, 앞으로 한국처럼 큰 허위는 가르치지 않고, 일본 나름의 방침에 따라 정상적인 국가처럼 당당히 애국심을 기를 방침으로 교과서를 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일본이 조선반도에서 수행한 문명개화의 역할이나, 문맹이었던 조선 일반 대중을 위해 근대적 학교 교육 제도를 도입한 것, 수백 년 동안 지배계층에 의해 거부되었던 한글을 보급한 것도 일본의 역할이었다는 점, 그리고 한국의 전후 경제 산업 발전에 일본이 크게 기여한 사실을 일본의 학생들에게 교과서에서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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