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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당시 일본인의 성생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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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일갈등타파연대 작성일 24-03-08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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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 섹스의 특징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인의 리얼한 성생활
by Hotekore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던 전쟁 중,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섹스를 하고 있었을까? 같은 일본이라도 시대와 환경이 바뀌면 사람들의 성에 대한 의식도 달라진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쟁 중 사람들의 성에 대한 생각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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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적부터 지금까지 역사가 이어져 온 것은 남녀가 성관계를 지속해 온 덕분이다. 하지만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던 전쟁 중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섹스를 했을까? 같은 일본이라도 시대와 환경이 바뀌면 사람들의 성에 대한 의식도 달라진다. 그리고 지금보다 즐거움이 적었던 전쟁 중에는 오히려 지금보다 더 활발한 성생활이 이루어졌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쟁 중 사람들의 성에 대한 생각을 소개하고자 한다. 성의 역사를 풀어보고 평화로운 현대에 감사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 본 기사는 2023년 7월 기준의 정보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〇 전쟁 중 섹스의 특징 / 당시 상황은?
일본이 겪은 가장 최근의 전쟁은 약 80년 전에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이다. 이때 중일전쟁은 이미 시작되었고, 전쟁 중이었던 기간은 1937년부터 1945년까지 8년 동안이다.
당시 사람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었을까? 부부나 연인의 성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생각하기 전에 먼저 당시의 사회적 배경과 가족 및 남녀 관계부터 살펴보자.
〇 사회적 배경과 사람들의 삶
일본의 참전과 함께 전쟁은 사람들의 삶에 큰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전쟁을 비판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엄격한 언론 통제 속에서 초등학생(국민학교)도 마찬가지로 군사 훈련, 버킷 릴레이, 방공훈련에 참여했다.
배급제로 식량 사정이 좋지 않아 전쟁 중 아이들의 평균 키가 6센티미터나 줄어들었다는 자료가 있을 정도였다. 1944년이 되자 연합군의 본토 폭격이 시작되었다, 도쿄, 나고야, 오사카, 고베 등 200개 이상의 도시에서 3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〇 전쟁 중의 남녀관계
당시 가족은 가부장제였고, 남존여비 사상이 당연시되던 시대였다. 결혼하려면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야 했고, 연애결혼은 15%도 되지 않았으며, 대부분 중매결혼이었다.
부부나 연인이 밖에서 손을 잡는 것 같은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부끄러워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말 그대로 밖을 걷는 것조차도 ‘아내는 세 걸음 물러서서 남편의 뒤를 따라 걸어야’ 한다고 여겨지던 시대였다.
〇 전쟁 중 섹스의 특징 / 장소와 빈도는?
전쟁 중이라는 상황과 상관없이 당시에는 결혼 전까지는 성관계를 갖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결혼할 때는, '부모끼리 결정한 상대와 한 번만 만났을 뿐' 또는, '결혼식 날 처음 만나서 결혼한다' 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남편이 전사한 후 남편의 형제와 재혼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이제부터 전쟁 중 성관계의 장소와 빈도에 대해 알아보자.
〇 어디서 섹스를 하고 했을까?
1957년 매춘방지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유곽, 유흥업소 등 매춘 관련 영업이 허용된 장소가 존재했다. 전쟁 중에도 항상 수요가 있었고, 남성들은 매춘업소 등에서 성욕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반면, 일반 여성들은 결혼하기 전까지 성관계 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맞선 자리에는 별도의 방에 깨끗한 이불이 깔려 있어 서로 마음이 맞으면 섹스를 할 수 있도록 준비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과 같은 러브호텔은 없었고, 일반 남녀가 섹스를 하는 곳은 오로지 집이 전부였다. 농촌에서는 헛간 등 야외에서 섹스를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던 것 같다.
〇 섹스의 빈도는?
전쟁 중에는 남편이나 남자친구에게 언제 소집통지서가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또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섹스의 빈도도 줄어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생명이 위태로운 긴박한 상황일수록 사람들은 서로의 체온을 확인하며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전쟁 중에도 유곽이나 유흥가 같은 곳은 번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평상시보다 즐거움이 줄어드는 가운데 평소보다 섹스의 빈도는 더 늘어났을 것으로 생각된다.
〇 지금보다 더 대담하게
남녀평등 의식이 없고, 성에 있어서도 남성 중심적이고, 여성은 쾌감을 느끼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는 개념이 심어졌다. 다만 일본은 서양에 비해 종교적 구속이 없고, 예로부터 성에 대한 감각이 개방적인 면이 있었다.
에도시대의 춘화는 예술이자 오락이며 성교육의 텍스트이기도 했다. 이미 여성용 성인용품도 있고, 현대의 AV도 얼굴이 드러나며 체위도 다양하다. 다이쇼 시대(大正時代 1912-26)에는 이미 문호들의 여왕과 노예라는 패턴의 관능문학 작품이 사회적인 현상으로까지 발전했다.
전쟁 중이라는 상황 속에서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현대보다 성에 대해 더 솔직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 Hotekore.jp 202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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