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회인] 조선시대 호란(胡亂) 피로인(被擄人)과 두 딜레마 2 / 이상익 (율곡학회 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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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일갈등타파연대 작성일 24-10-13 08:06본문
조선시대 호란(胡亂) 피로인(被擄人)과 두 딜레마
*결론부
지금까지 호란으로 인해 야기된 주회인 문제와 환향녀 문제를 살펴보았다. 이제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고, 간단히 평가해 보기로 하자. 주회인 문제와 관련하여 조정에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개진되었는데, 그것은 결국 둘로 수렴된다.
첫째는 ‘주회인을 한 사람이라도 淸에 되돌려보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조정의 잘못으로 피로인이 생기고, 그들이 천신만고 끝에 탈출해왔는데, 그들을 다시 잡아 돌려보낸다는 것은 참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장유・정경세・김상헌 등은 이처럼 ‘도덕적 원리원칙’을 강조했다. ‘주회인을 결코 淸에 돌려보낼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두터운 예물을 보내 淸을 달래자’고 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김상헌은 주회인을 돌려보내는 것도 반대하고, 예물을 보내는 것도 반대했다. 김상헌은 ‘지략이 있는 사람을 淸에 보내 옳고 그름을 따지며 쟁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둘째는 ‘주회인을 몇 사람이라도 淸에 돌려보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주회인을 돌려보내지 않으면 淸이 다시 침략할 것이므로,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약간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귀・오윤겸・이정구 등은 이처럼 ‘현실적 이해관계’를 강조했다. 이들 역시 주회인의 쇄환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 주회인 몇 명을 돌려보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예물이나 속전으로 淸을 달래자는 것이다. 오윤겸은 ‘몇몇 주회인을 돌려보내면서, 속전을 함께 가지고 가서 즉시 속환시 키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비국(備局)은 첫째 주장에 대해서는 ‘그저 안 된다고만 말할 뿐 상황을 타개할 방책은 말하지 못한다’고 평하고, 둘째 주장에 대해서는 ‘화란(禍亂) 을 늦추고 백성을 보호하려는 계책’이라고 평했다. 인조는 처음에는 첫째 주장에 동조하다가, 결국엔 둘째 주장을 채택했다. 주회인 문제의 논의 과정에서 주목할 것은 다음의 두 가지이다.
첫째, ‘경도(經道, 常道)와 권도(權道)’의 문제이다. 이귀는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는 방법에는 경도도 있고 권도도 있다’고 말했다. 요컨대 그는 국가를 보존하기 위하여 ‘권도’를 발휘하여 ‘몇몇 주회인을 돌려보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장유는 ‘차마 하지 못할 일은 하지 말자’고 했거니와, 그는 ‘경도’를 고수하면서 국가의 존망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로 보았다.
둘째, ‘개인의 처신과 국가의 처사’ 문제이다. 오윤겸은 “국가의 일을 처 리하는 것은 필부가 처신하는 것과는 다르니, 이해(利害) 관계를 전적으로 도외시할 수는 없다.”고 했다. 요컨대 개인적 차원에서는 이해관계를 떠나 서 자신의 도덕원칙을 고수해도 되나, 국가의 차원에서는 이해관계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개인의 차원에서는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고, 그 결과를 감수(甘受)할 수 있다. 이는 자신의 존재이유를 자기 스스로 규정하고 자기 스스로 책임지는 것인바, 우리는 이를 훌륭한 일로 칭송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의 차원에서는 이러한 태도는 무책임한 것이다. 개인의 존재이유는 개인 스스로 규정할 수 있지만, 국가의 존재이유는 특정한 개인이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식자들에 의하면, 국가의 존재이유는 무엇보다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 이다. 그렇다면 국정에 참여하는 정치가들은 자신의 도덕적 신념을 실현하는 것보다 국가의 존재이유를 실현하는 것에 충실해야 한다. 오윤겸은 바로 이를 지적한 것이다.
전통 유학에서 ‘경도와 권도’는 많이 논의된 문제였고, ‘비상시에는 권도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은 많은 유학자들의 통론이었다. 그런데 ‘개인의 처신 과 국가의 처사’를 구분하는 것은 전통 유학에서 찾아보기 힘든 내용이다. 전통유학은 오히려 개인의 처신과 국가의 처사를 일관시킬 것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었다. 예컨대 <대학>의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는 ‘개인의 처신과 국가의 처사를 일관시켜야 한다’는 의미를 함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오윤겸의 ‘개인의 처신과 국가의 처사는 다르다’는 주장은 사상사적으로 진일보한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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