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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구술자료집 3 - 고종학의 고생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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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일갈등타파연대 작성일 23-11-2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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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구술자료집 3 - 고종학의 고생담 (2)  


질문) 그래가지고 그 800원을 돌아와서 어디에 쓰셨어요?

고종학) (조선에 돌아와서) 우리 큰형님 병 간호하느라고 살릴라고 그 좋다는 약을 사다주고 별짓을 다해도 그냥 그 돈 다 없어지니까 돌아갔어. 그 병 간호하느라고 다 썼어. 우리 큰형이 난봉쟁이여. 그냥 술만 먹고 술집에 가서 저거하고 술집 갈보하고 살림나고 별짓을 다 했어. 그렇게 그냥 저기하다가. 


질문) 제가 듣기로는 일본에서 제대로 임금을 안 줘가지고 임금을 못 받아온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런 사람들은 왜 그럴까요?

고종학) 음, 우리하고 같이 간 사람들은 다 일비 받아가지고 나왔어요. 유곽에 다니는 사람들은 돈을 썼지. 돈 한 푼도 못 가져온 사람 있어. 돈을 받긴 받아도, 나는 절대 그런데 댕기는 것도 모르고 아주 그냥 안썼지. 


질문) 그 유곽은 누가 운영해요?

고종학) 한국 사람도 있고, 일본 사람도 있고 그렇지. 


질문) 근데 어르신 징용 갈 때 큰형님이 가야 되는 거 아니에요? 더 나이가 많은데?

고종학) 아니지, 그 집안에 일을 할 사람은 남는 거여. 일할 사람 다 가면 그 집일(생계)는 누가 저기 해여. 마누라든지 어머니를 누가 저기를 해, 그러니까 혼자인 사람은 안가지.(생계를 책임진 사람은 안간다는 뜻) 지금 말하자면 그 사람이 호주니까 가면 안된다 그런 거. 


질문) 그럼 어르신은 징용 갔다 온 기간이 어떤 게 나한테 피해가 되었다 그런 게 있을 거 아녜요?

고종학) 피해는 뭐 그 지금 그 때는 일본을 저기 위해서 간 거니까 이런 거를 못 따지지. 


질문) 그러면 노무관리라든가 이런 건 어떻든가요? 사람들 관리를 어떤 방식으로? 굉장히 폭력적이라든가 그래도 나름대로 잘했다든가 이런 게..

고종학) 일하는 사람들이니까 뭐 춥지 않게 저거하고 중대장부터 대대장한테 지시가 내려와요. 관리 잘해주라고. 


질문) 일이 굉장히 고되지는 않았어요?

고종학) 뭐 그냥 노냥 곡괭이 들고 그저 돌 깨뜨리고 일하는 거니까 뭐 근심할 틈이 없어. 해나 지면 들어가서 먹고 잠이나 자는 거지 이 생각뿐이지 뭐 딴 생각이 없어. 


질문) 그러면 (인근 지역에서) 징용가서 막 크게 다치거나 이런 사람이 없었고, 그 담에 그 4명 같이 간 사람들은 자기 임금을 다 모아서 그냥 잘 가지고 들어온 거네요?

고종학) 그 사람들은 돈 하나도 안 가져왔어. 나만 가지고 왔지. 


질문) 그 사람들은 뭐에 그렇게 돈을 썼어요?

고종학) 그 사람들은 다 썼지. 


질문) (작업장에서) 반장이나 소대장 중대장 전부 조선 사람이에요? 일본 사람은 없어요?

고종학) 일본 사람은 없어. 전부 한국 사람이지. 


질문) 작업을 지시하거나 작업을 분담하는 사람들이 전부 조선 사람이 했었다는 거죠? 그러면 그 중에서도 특별히 가혹하게 했거나 심하게 사람들을 다루거나 뭐 그런 사람도 있었어요?

고종학) 아니 뭐 별로 그런 거 없어. 


질문) 할아버지 그 같이 가신 분 4분은 징용 가서 받은 임을 하나도 못 가져왔다고 하셨는데, 그 굉장히 큰 800원이나 들고 온 어떤 비결이 있어요?

고종학) 나는 쓰지를 않았어요. 


질문) 하하, 다른 분들은 30원을 받으면 유곽을 가건 어딜 가건 쓸 데가 있다는 거잖아요. 하나도 못 가져왔다는 거는, 그런거죠?

고종학) 어(예).   

 

*


징용에 관련된 부분만 일부 발췌해서 살펴보았다. 


지역으로 대상 인원이 할당되면 가정 형편을 고려하여 건강이 안좋거나 뇌물을 빽을 쓴 사람들은 빠질 수 있었고, 형제가 많은 집에서 놀고 있는 사람, 즉 그 가정의 생계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자가 주로 징용 대상자로 선발되었다. 


지침을 내린 것은 상부의 일본인 관리였을 것이나, 이걸 실행한 것은 조선인 하급관리들이었다. (그러니까 강제로 패서 끌고 갔다고 해도 우리 민족끼리 지지고 볶았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고)


현지에서의 대우는 괜찮은 편이었다 라고 들린다. 

생필품 등의 보급도 괜찮았고, 월급도 꼬박꼬박 나왔다. 희망자에 한해서 고향으로 송금을 해주었다. 

구술자는 17개월의 징용 생활을 했는데, 월 30원이라면 다 모아도 510원 밖에 안되는데, 본인은 800원으로 기억하고 있다. 

기억에 오류가 있거나, 모은 돈 외에 퇴직금을 정산해 받았을 것으로 색각된다. (구술자 본인은 무학이다.)


강제 납치와 노예 노동이 아닌, 관이 주도적으로 빈농들을 해외 취업에 알선한 모양새에 가깝다


▦ 원 출처: 화성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구술자료집 3

▦ 출처: 네이버 블로그 ‘백년역사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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