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에 동원돼 강제 노역한 조선인 추도비를 불허한 것이 적법하다는 일본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도쿄신문은 도쿄(東京)고등재판소(법원)이 전쟁 중 노역에 동원된 후 군마(群馬)현에서 사망한 조선인 추도비 설치 허가 갱신을 거절한 것이 위법이라며 비석을 관리하는 시민단체가 낸 소송에서 '갱신 거부는 불법'이라고 규정한 1심 판결을 뒤집고 전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고 27일 보도했다.

일본 군마현의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연합뉴스 자료 사진] 
일본 군마현의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연합뉴스 자료 사진] 

 

    재판부는 비석 근처에서 열린 추도 행사에서 참가자가 '강제 연행'이라는 발언을 반복해 비석이 정치적 중립성을 잃었다고 규정하고서 "갱신을 불허한 군마현 지사의 판단에는 이유가 있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비석 설치 시민단체를 계승한 원고인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의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을 대리하는 변호사는 "부당한 판결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며 상고할 뜻을 분명히 했다. 

    반면 야마모토 이치타(山本一太) 군마현 지사는 "타당한 판결"이라고 주장했다.

    추도비는 일본 시민단체인 '군마 평화유족회'가 한반도와 일본 사이의 역사를 이해하고 우호를 증진하겠다는 목적으로 군마현 다카사키(高崎)시에 있는 현립 공원인 '군마의 숲'에 2004년 4월 설치했다.

    비석의 앞면에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라는 문구가 일본어·한국어·영어로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조선인에게 큰 손해와 고통을 준 역사의 사실을 깊이 반성, 다시는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표명"한다고 기재돼 있다.

    또 "노무 동원에 의한 조선인 희생자를 진심으로 추도하기 위해 여기 비를 건립한다"는 문장도 담겨 있다.

    설치 당시 시민단체는 '강제 연행'이라는 표현을 넣고자 했으나 군마현이 이런 구상에 난색을 보여 '노무 동원'을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다.

    당시 군마현은 2014년 1월 말까지 시한부로 비석 설치를 허가하면서 '정치적 행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

    이후 일본 사회에 역사 우경화 분위기가 강해진 가운데 2012년 5월 무렵부터 이 비석이 "반일적"이라는 주장이 군마현에 접수되기 시작했다.

    또 비석 철거를 요구하는 단체가 선전 활동에 나섰다.

    시민단체는 설치 허가 시한 만료를 앞둔 2013년 12월 허가 갱신을 신청했으나 자민당 소속 군마현 의회 의원이 추도비가 '반일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고 문제로 삼는 등 비석을 철거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이후 군마현은 추도식 참가자가 '강제 연행의 사실을 알려서 올바른 역사 인식을 지니도록 하고 싶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 등을 문제 삼아 설치 허가를 갱신하지 않기로 2014년 7월 결정했다.

    시민단체는 군마현의 결정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을 담당한 마에바시(前橋)지방재판소는 설치 허가 불허 처분을 취소한다고 2018년 2월 판결해 시민단체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3년 반 만에 내려진 항소심 판결은 일본의 가해 역사를 지우는 움직임이 손을 들어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