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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은 베트남에서 위안소를 운영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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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일갈등타파연대 작성일 21-03-30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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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2일, 일본의 유력 주간지 [주간문춘(週刊文春)]은 한국군이 베트남 전쟁 당시 위안소를 설치했으며 베트남인 위안부를 모집하여 한국군 사병을 상대로 매매춘을 시키고 있었다는 내용을 게제했다. 이 내용은 일본 방송사인 TBS 워싱턴 지국장인 야마자키 노리유키(山口敬之) 씨의 취재 결과 밝혀진 것이다. 종군위안부 문제로 시종일관 일본을 비난하고 있는 한국이 실은 베트남에 위안소를 설치하며 스스로 운영하고 있었다는 수치스러운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것은 한국인의 이중적인 자세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주간문춘]의 기사 원문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여기에 올려 놓는다. 


<한국군은 스스로 ‘터키탕’이라고 불리는 한국군 전용 위안소를 설치하며 베트남 여성에게 매매춘을 시키고 있었다>


 그러면 한국군의 위안소 운영이라는 사실을 베트남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남 베트남 정부의 전직 관료 출신이며 현재는 워싱턴 교외에 사는Nguyen Goc Bich 박사로부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Bich 박사와는 작년(2014년) 여름에 워싱턴에서 열린 베트남 전쟁 50주년 기념 포럼에서 만났다. 베트남 중부의 도시 다낭에서 태어나 사이공에서 자란 Bich 박사는 베트남 전쟁이 본격화되기 전의 1958년에 미국에 건너와 콜롬비아 대학이나 교토 대학 등에 유학한 후 미국의 몇몇 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아시아 문학의 연구자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의 한국군에 의한 양민 학살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고 있었으나 위안소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고 한다. Bich 박사는 키가 작고 백발 머리의 온후한 신사였으나 제가 지참한 서한을 읽자마자 표정이 달라졌다.

 

 “범죄나 만행이 저질러졌다면 그 범인이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베트남인이든 미국인이든 죄가 되는 것입니다” 

 재미 베트남인 단체의 의장도 맡고 있는 Bich 박사에 따르면 “베트남인은 2000년 전의 사건도 어제 오늘처럼 말하는 민족”이라고 한다. 

 “한국군이 베트남인에 대해 만행을 저질렀다면 베트남인은 그것을 유야무야하게 끝내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우리는 양심에 따라 한국과 마주앉아 조사하고 협상을 벌이며 흑백을 가려야 합니다. 진실을 알 수 없다면 언제까지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국가간의 관계를 훼손하게 됩니다”

 

 Bich 박사가 가장 강조한 부분이 위안소 설치를 경정한 한국의 국가적 의지이다.

 

 “일부의 불량배가 벌인 위법 행위가 아닌, 한국 정부가 정책적으로 벌이고 있었다면 간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국가가 관여했다면 절대로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군의 규율 유지”, “성병 방지”를 위해 한국 정부와 한국군이 조직적으로 위안소를 설치하고 운영했다면 거기에는 명백한 국가의 의지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구도는 한국 정부가 강하게 비판을 반복하고 있는 일본군의 위안소와 전혀 다른 바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당시의 박정희 대통령은 일본의 육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 군인으로 만주 각지에서 전투를 벌인 경력을 가진다. 그만큼 일본군 위안소의 기능과 구조를 잘 알고 있었다. 또한 미군 사령부에서 문제의 서한을 받은 채명신 사령관은 1961년에 박정희가 516 쿠데타를 일으킨 직후에 한국군 수뇌부에 발탁된 박정희의 복심 중의 복심이다. 

 채명신은 1994년에 집필한 자서전 [사선을 넘고 넘어]에서 한국 전쟁 당시 한국군이 위안소를 설치한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한국 전쟁 휴전 후 불과 10여 년 후에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군이 베트남에서도 위안소를 설치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박정희와 채명신이라는 정부와 국군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베트남에서도 위안소를 운영할 수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한편, 제가 미국에 근무하게 된 후에도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은 국제 무대에서 일본군의 위안소 설치에 대해 국제 사회에 강하게 호소하고 있었다. 작년(2014년)의 UN총회에서는 세계를 향해 이와 같이 연설했다. 

 “전쟁 당시의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시대나 지역을 불문하고 명백히 인권과 인도주의에 위배되는 행위다”

 

 베트남에 한국군의 위안소가 존재한 것이 미군의 공문서에 의해 밝혀진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자기가 한 말에 대해 스스로 응답하는 의무가 생겼다. 

 박근혜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를 반일을 선동하고 국정 운영이나 외교 정책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게 아니라 진정한 인권 문제로 생각한다면 사이공에서 한국군의 성적인 놀이게가 된 베트남 여성에 대해 생각이 미쳐야 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어떤 경위로 위안부가 되었는가, 자기 의사에 반해서 위안부가 되는 것을 강요 당한 여성은 없었는지를 먼저 조사해야 할 것이다. 한국 위안부에 대해 조사를 벌인 것과 마찬가지로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군 위안소와 일본군 위안소는 어떤 점이 같고 어떤 점에 차이가 있었는가, 양국의 위안소 운영에서 어떤 점이 문제가 되는지를 조사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공정한 자세로 한일 양국의 위안부 문제가 정리되어 양국이 진정한 화해로 나아가는 초석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묵살하거나 조사를 하지 않고 부정만 한다면 한국인이야 말로 자기들에게 불합리한 사실에 등을 돌리고 역사를 똑바로 보지 못하는 국가임을 국제사회 앞에서 스스로 증명하게 될 것이다.

 

 이 기사를 요약하면 한국군이 베트남에 설치된 한국군 전용 위안소는 일본군 장교였던 박정희와 516군사혁명의 가담자인 채명신이라는 두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박정희는 경력 상 일본군의 위안소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한국은 유엔군(미군)을 위해 스스로 위안부를 모집하여 위안소를 설치했다. 이 사실은 채명신도 저서에서 인정하고 있다. 일련의 흐름으로 보아서 한국군이 베트남에 위안소를 설치한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 입을 열어야 할 것이다.


◎ 출처: ISHIGAMI 다음블로그
한국인이 알아서는 안 될 불편한 진실 - 한국군은 베트남에서 위안소를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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