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위가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 등 국제적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이유 / 최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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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일갈등타파연대 작성일 21-03-15 01:18본문
공대위가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 등 국제적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이유
1. 위안부 문제 등 일제하 이슈는 조기에 종결되어야만 엄중한 국제정세 속에서 한국은 정상적인 국가로서 실리적인 외교에 임할 수 있습니다.
2. 한일위안부합의는 지난 한일기본조약 및 청구권협정 등 국제법적인 국가 간의 약속의 연속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3. 한일위안부합의는 아베 신조 내각총리대신이 고노 담화와 동일한 내용과 서면으로 총리 대신의 자격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죄와 반성을 표한 것입니다.
4. 한일위안부합의는 고노 담화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진 ‘위안부 강제연행설’이 거짓으로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군의 관여’가 분명한 사실이라는 점에서 고노 담화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5. 1993.8.4 고노 담화에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은 ‘위안소는 군 당국의 요청에 따라 설치·운영된 것이며, 위안부 이송에 구 일본군이 관여했다”고 인정했습니다.
6. 2015.6.9. 고노 요헤이 전 내각관방장관은 일본기자클럽에서 “관리를 당했다는 것부터가.. ‘광의의 강제성’이 인정되었다고 보았습니다”라며 “팔을 끌고 데려오거나 멱살을 잡고 끌어냈다는 것이 문장으로 남아 있지는 않으니 그것을 쓸 수는 없습니다”라고 재확인했습니다.
7.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네덜란드 여성 사례를 보면 인도네시아에서 모집한 여성을 군대가 가서 강제적으로.. 명백히 강제적으로 끌고 가서 위안부로 일을 하게 한 사례는 네덜란드의 조사로 밝혀졌고 네덜란드 정부도 분명히 밝혔습니다”라고 강제연행을 인정했습니다.
8. 고노 담화는 일제 하 식민지 조선만이 아니라 전시기 위안부 관련 전쟁 피해를 당한 당사국 모두를 염두에 둔 국제적 담화였습니다.
9. 따라서 일본 정부는 위안소의 수가 1937년 중일전쟁 후 비약적으로 증가(추진한 이는 파견군 참모부장 오카무라 야스지)하는 등 ‘군의 관여’를 시인, 1995.6.14. 아시아여성기금을 설립하고 필리핀, 한국, 대만, 네덜란드, 인도네시아 등을 대상으로 보상사업을 실시하게 됩니다.
10. 이어 2015.12.28, 박근혜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일본과 협상, 타결하여 최종적 종결을 약속합니다.
11. 정대협(정의연, 이하 정대협)은 그간 터무니없는 수의 ‘위안부 강제연행’을 외치며 한국민을 선동했지만 신뢰하기 어려운 번복성 증언뿐으로, 이를 그대로 기록한 유엔 쿠마라스와미 보고서 또한 법정에서 팩트로 인정받기에는 쉽지 않습니다.
12. 따라서 국제법상 이들이 기댈 유일한 근거는 고노 담화에서 인정한 ‘군의 관여’인 ‘광의적 강제’ 그것입니다.
13. 일본은 고노 담화에 기반하여 아시아여성기금 및 한일위안부합의(화해치유재단)로 사죄 및 지원금 등 후속조치를 완료했습니다.
14. 정대협은 고노 담화를 인정하지만 고노 담화를 계승한 한일위안부합의는 부인합니다. 번복성 증언에 불과할지라도 강제로 끌려갔다고 국민들에게 각인시킨 데 따른 후과로, 합의를 인정하는 즉시 이들 사업은 존재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15. 또 정대협을 비판하는 어떤 단체는 고노 담화와 위안부합의 자체를 모두 부정합니다. 이 단체는 “(조선인 위안부는) 단 한 명도 끌려가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만, (위 7번)“인도네시아의 네덜란드 여성 사례를 보면 인도네시아에서 모집한 여성을 군대가 가서 강제적으로” 끌려간 사실이 나옵니다.
16.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는 전쟁 참화를 입은 국제사회를 상대로 사죄와 보상을 실시했습니다. 그럼에도 정대협과 이 단체(15번)는 오로지 한일관계만 중점으로 문제 삼고 있습니다.
17. 이러한 방식으로 한일관계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반일동상진실규명공대위는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 등 국제적 약속 이행을 촉구하며 이를 위해 여야가 힘을 합쳐 이 문제를 속히 종결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21.3.15
반일동상진실규명공대위 공동대표 최 덕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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