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조선인 전시노동자, 일제 하 ‘강제연행’은 사실이었을까? 부정도항(不正渡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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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일갈등타파연대 작성일 21-01-24 15:09본문
다음 통계에서 우리는 일제 전시기(戰時期)에 조선인들이 돈을 벌기위해 일본으로 밀항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오늘날 가난한 멕시코인들이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어 미국에 정착하거나 추방당한 사례나, 국내에 들어와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실태를 감안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반일동상진실규명공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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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내무성 통계에 의하면, 1930년부터 1942년까지 13년간, 내지(일본)에서 발견된 부정도항자는 3만9천 명, 조선으로 송환된 자는 3만4천 명에 이른다.
특히 주목하고 싶은 것은 전시동원이 시작된 1939년부터 1942년까지 4년간에 부정도항으로 발견된 자가 2만3천 명(전체의 6할에 조금 못미침), 송환자가 1만9천 명(전체의 6할에 못미침)으로 전시동원 중에 오히려 부정도항자가 급증했다는 점이다. 1939년부터 1941년까지는 ‘모집’, 1942년부터는 ‘관알선’의 시기였다.
만일 같은 시기에 조선으로부터 억지로 노동자들 연행해 온 것이라면, 왜 2만 명 가까이를 송환했는지 설명할 수 없다. 결국 강제연행은 없었던 것이다.
일본 정부는 전시동원이 이루어진 약 7년간의 시기 중에서, 통계가 존재하는 1939년부터 1942년까지 4년간, 2만 명에 가까운 조선인 부정도항자를 조선으로 강제 송환했다. 이 사실은 당시엔 상식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잊혀졌다. 여기에 전시동원 실태를 알 수 있는 열쇠가 있다.
‘부정도항’ 방법은 내무성이 1930년부터 1942년까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브로커에게 현금을 지불하고 소형 선박으로 밀항하거나, 도항증명서를 위조하거나, 내지인으로 가장하는 것이었다.
주목할 것은 전시동원 개시 후에 부정한 방법으로 동원대상자가 되어 ‘부정도항’하는 자가 꽤 있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는 ①동원대상자의 도항 중지 때에 서로 합의한 뒤 호적등본을 받거나 ②인원점호 때 동원대상자가 없으면 그를 대신하여 대답하고 섞여 들어가거나 ③인솔자의 빈틈을 노려 섞여 들어가는 방법 등이 있었다. 내지에 도착하면 그들은 틈을 보아 도망갔다(*자유로운 일자리를 찾아).
*출처: 니시오카 쓰토무 지음 이우연 옮김 『날조한, 징용공 없는 징용공 문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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