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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매춘자료] 수업시간에 위안부-매춘 관계 설명한 류석춘 교수 사건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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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일갈등타파연대 작성일 22-12-0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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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慰安婦, military prostitutes) (5)
[쟁점토론] 2022.11.23. 검찰(서울서부지법)이 2019년 수업 시간에 위안부와 매춘 관계를 설명한 류석춘 당시 연세대 교수에 징역 1년 6개월 구형했다. 이 사건은 법원의 판결 여부에 따라 한일관계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위안부에 대한 역사·정치·경제·군사·성담론 등 관련 분야 자료를 통해 팩트에 접근해보기로 한다.
■ 일본
각지에 진주군용의 위안소가 설치되어 미군이 이용했다. 그 중에서도 도쿄를 중심으로 영업한 '특수위안시설협회(RAA)'가 잘 알려져 있다. 후지메 유키에 의하면, RAA만으로도 전성기에는 7만 명, 폐쇄시에는 5만5천 명의 여성이 일하고 있었다. 비슷한 시설은 일본 각지에 존재했으며 일본인 여성이 미군의 상대를 했다.
■ 한국전쟁
미군을 위해 한국에 설치된 '기지촌 (Camp Town 기지촌 Kijichon)'에서 미군 상대의 매춘이 이뤄졌다.
1980년대까지 100만 명이 넘는 한국 여성이 미군의 상대를 했다. 1962년 한국 기준으로는 쇼트타임으로 2달러, 롱타임으로 5달러였다. 고정적인 성적 관계를 가짐으로써 월급을 받는 여성도 있었다. 대한민국 대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1964년 당시 위안부가 월 5,000원(한화)의 수입을 얻고 있었다.
1955년 서울시 경찰국에 따르면 미군 상대의 매춘 여성은 61,833명이며, 1962년 당시 한국에서는 미국 병사 상대의 위안부로 2만 명 이상이 등록되어 있었다.
■ 베트남 전쟁
미군 주위에는 베트남 여성이 일하는 군 공인·묵인 매춘부가 존재했다. 하타 이쿠히코는, 이러한 매춘부는 일본군의 위안소와 유사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City of Crime"과 "Disneyland"라고 불리는 미군 위안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군 위안소, 미국 위안소"를 참조하십시오.)
미국 육군 제1사단 제3여단(병사 4,000명)의 예에서는, 베트남 여성 60명이 거주자로 미군을 상대하고 있었다. 요금은 500 피어스톨 (2달러)이었다. 여성의 순수입은 200피어스톨(0.8달러)로, 나머지는 다양한 지불에 사용됐다. 여성들은 성지사의 지시로 모여 라이케 시장의 지시로 마을로 보내졌다. 미군은 위생과 안보면을 담당하고, 인원의 조달이나 요금의 약정은 베트남인 민간인에게 맡겼다.
신시아 엔로(Cynthia Enloe)는 전쟁 말기에 미군을 상대한 여성이 30만에서 50만 명이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 대만 주둔기
대만에 주둔하는 미군은 1958년 이후 중화민국 측에서 미군 전용 '위안소( 특약차점 )'를 제공받고 있었다. 시설의 관리는 대만측, 위생·성병의 관리에 관해서는 미군과 대만측이 공동으로 실시했다. 1979년에 미군이 대만에서 철수할 때까지 이 상황이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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