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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풍경] 기생과 사회의 구조적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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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일갈등타파연대 작성일 24-06-02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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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들이 사회의 구조적 변화, 예를 들면 도시의 발달로 인한 서비스업의 증가, 특히 다방이나 바 등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직업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것도 직업적 유사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새로운 현대적 직업에 대한 거부감이 이들에게 보다 덜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생들이 윤락녀로서 사회의 주변인으로 몰락해가는 과정이 아니라 1930년대 현대 사회로 진입하는 현상에서 새로운 문화적 주체로 전환되었던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흐름이었다.
1920~30년대에 언론에서 새로운 직업군에 대한 소개가 활발했던 것은 이색적인 사건에 대한 세간의 홍미를 자극시키기 위한 측면도 있었지만 현대적인 삶의 현상에 대한 적극적인 도입을 유도하려는 측면이 강했다.
새로운 직업군으로서 도시의 서비스업에 속한 직업들이 부 각되고 그중에서 기생출신이 가장 많았다는 것은 바로 기존의 지배층 중심의 문화에서 대중문화가 생성되고 증폭되는 과정에서 기생 혹은 기생의 새로운 직업들이 지니는 역할이 그만큼 커졌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대중사회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대중적 공간과 미디어의 중심에는 항상 기생들이 있었으며 그들은 대중문화의 핵심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기생들에 대한 당시의 시각이 긍정적일 수만은 없었다. (사회 일각에서) 그들은 '노예 매매제의 유물이며, 가정 파괴자이며, 국민 원력의 소모자'들이었으며 축첩의 원인제공자인 매음, 매소자들이어서 기생철폐가 주장되기도 하였다.
기생들은 서울 시내의 명월관이니 식도원이니 하는 '갑종甲種요리점' 에만 출입토록 되어 있었는데, 실제로는 '시내외의 절간으로, 야릇한 여관집으로, 공원산보로, 극장 으로, 카페로, 기생의 서식지는 점차 그 범위가 확대되어 가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러한 시각은 당시의 기생에 대한 흥미위주의 기사들, 예컨대 "기생철폐론' 과 같은 해인 1931년 출세한 기생들에 대해 쓴 '장안 명기영화사' ( 10월호)에서 보듯이 기생에 대한 호감과 배척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한쪽에서 보면 기생들은 적어도 봉건적인 유물로서는 배척해야 할 대상이 였으나, 실제적인 면에서는 현대적인 대중문화의 스타였던 것이다.
 
[이미지 1] 유곽에 빠진 여성에게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 독자투고 삽화
"몸은 개천에 정신은 광명을 향하야"
[이미지 2] 1931년 10월호. '장안명기영화사'에 게재된 기생사진
 
□ 김진송. 현대성의 형성 - 서울에 딴스홀을 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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