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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인신매매 기사 6] 50여명 처녀를 유인, 북지(북중국) 만주 대부대에 팔아먹음, 수양딸로 삼는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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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일갈등타파연대 작성일 24-05-20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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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3월 28일 동아일보
- 50여명 처녀를 유인, 북지(북중국) 만주 대부대에 팔아먹음, 수양딸로 삼는다며 백지위임장을 받아서 범죄감행. 제2 하윤명 사건으로 확대
조선인 인신매매범 천순동이 체포되고 소녀들은 일본경찰에 의해 구출되었다.

얼마 전 부내 서대문서에서 유괴마부부 하윤명 사건 이상의 희유 대규모의 유괴마단 일당 5명을 일망타진하여다가 엄조(엄중조사)를 계속중이라 함은 누보한 바와 같거니와 그후 동서의 계속 취조의 결과 정작 일당의 두목 천순동(35)과 천억만(24) 형제가 이미 검거선을 탈출하였다는 의외의 사실이 탄로되어 26일 김(金) 민(閔) 석부(石部) 형사등은 천가형제가 탈주 잠복하였다는 인천 모 여관을 습격하여 무난히 체포, 엄중 취조한 결과 다음과 같은 신인공노의 무진죄상이 속속 판명되어 취조 경관을 경악케 하였다 한다.
즉 천순동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 그의 사촌 아우 천억만 외 친척형제들을 경향 각지로 보내어 가난에 울고 혹은 허영에 날뛰는 시골처녀들의 부형을 찾아다니며 수양녀로 데려다가 호의호식에 공부까지 시켰다가 후일 혼령(婚齡)에 달하면 서울 부호의 며느리로 시켜주겠다는 등 혹은 좋은 곳에 취직을 시켜주겠다는 등 별별 감언이설로 그럴법하게 꼬이는 동시에 수양녀로 한다는 백지위임장과 또한 호적초본 인감증명 등을 맡아 가지고 와서는 여급 혹은 기생작부 등에 매각하고 아직 연령이 어린 소녀는 하녀로 학대하다가 크면 역시 매소부(賣笑婦)로 인육시장에 넘기었다는데 이상과 같은 교묘한 수단의 형제의 독수(毒手)에 희생된 소녀 혹은 유부녀는 현재 동서에 구출하였다는 배금순(19) 이옥희(16) 등 15명의 처녀외에 이미 북지(北支)와 만주 혹은 경성 시내에 매소부로 넘긴 부녀자는 지금까지 판명된 수만 35명으로 앞으로 얼마나 판명될지 모르겠다 한다.

‘단장은 천가형제 서대문경찰서에서 잔당소탕’
별항과 같은 일당의 두목 천순동은 전기와 같이 그의 친척형제 외에 다수 부하를 유괴편의대처럼 경향각지에 파견하여 천순동이 아직 체포된지도 모르고 처녀유괴에 활약하고 있는 잔당이 적어도 10여명에 달할 것이므로 불원동서 형사대는 천순동의 자백에 따라 경향각지에 흩어진 유괴편의대의 대대적 소탕전을 전개하여 사로잡을 것이라 한다.

구출된 처녀 △이옥순(17) △장금화(18) △손복동(16) △변순길(15) △곽순희(17) △전옥희(16) △남순동(20) △방순희(16) (사진은 유혹당한, 여자의 일부 범인집에서 나온 것)

‘처녀유인의 부산(副産), 금밀수까지 탄로’
처녀에게 돈을 벌 수 있다며 유인했지만, 그곳은 매춘을 위한 밀수로 발각되었다.
그리고 이번 유괴사건 적발의 부산물로 동서에서 체포 취조 중이던 아현정250의 46 박옥동은 금밀수범으로 판명되어 별항과 같은 대규모의 유괴마단 사건과 아울러 금밀수 사건도 취조키로 되었다하며 지금까지 판명된 밀수금액은 500여원어치의 금괴에 불과하나 취조여하에 의해서는 의외의 방면에 발전할는지도 모르겠다 한다.

[동아일보 1939년 3월 28일 석간 제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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