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연합군 사건] 점령기 일본에 있어서의 강간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일갈등타파연대 작성일 25-09-11 17:29본문
점령기 일본에 있어서의 강간
일본의 특수위안시설협회(RAA) 폐지 이후, 즉 점령군 위안소가 닫힌 뒤 미군 및 연합군 병사들에 의한 강간(성폭행) 사건들에 대해, 일본 위키피디아 “占領期日本における強姦”(점령기 일본에 있어서의 강간) 항목을 바탕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개요
“점령기 일본에 있어서 강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연합군(미군, 영연방군 등)의 군사 점령 하에 있을 때 발생한 일본 여성에 대한 강간·성폭행 사건들을 뜻한다.
숫자 및 추정 피해
연구자 후지메 유키에(藤目ゆき)에 따르면, 점령군 상륙 후 1개월 동안만으로 최소 3,500명 이상의 일본 여성이 연합군 병사에게 성폭행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됨.
이후 피해 신고 건수:
1947년: 283건
1948년: 265건
1949년: 312건
공창(위안시설)이 폐지된 후에는 강간 발생률이 급격히 증가했다는 주장 있음. RAA 활동 종료 이후 하루 평균 강간 건수가 약 40건 → 약 330건으로 증가했다는 조사 결과가 있음.
구체적 사건 사례
여러 지역에서 여러 건의 대규모 집단 강간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지역 시기 및 내용
- 도쿄 대오모리(大森, 현재 대타구) 1946년 4월 4일, 밤중에 3대의 군용 트럭을 탄 미군 50명이 중환자 병원 (中村病院)에 난입, 여성 환자 약 40명 + 여성 병원 직원 37명을 집단 강간. 2세 아동 피해자도 있었고, 남성 직원 1명이 살해됨.
- 나고야 시 1946년 4월 11일, 30~60명의 미군 병사들이 주택가에 침입하여 전화선 끊고, 수명의 여성(10세 ~ 55세)들을 강간함.
- 홋카이도 삿포로 등 상륙 이후 미 공수부대 병사들이 일본인 여성에 대한 폭행, 강간, 약탈 등을 저지른 사례가 비교적 잦았음. 피해자 중 자살한 이들도 있음.
검열과 보도의 억제
강간 사건들이 공식적으로 보고되거나 언론에 보도되는 경우가 매우 제한적이었음. GHQ의 명령 아래 언론(신문 등)에 대한 검열이 있었고, 연합군을 비판하는 기사들은 압력 · 검열로 인해 크게 축소되거나 사라졌음.
피해자들이 “수치” 혹은 “불명예”를 두려워해 신고하지 않거나, 신고해도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경우 다수 존재. 기록상의 숫자는 실제 규모보다 훨씬 적을 가능성이 높음.
영향 및 후속
공창 위안시설인 RAA가 제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했다는 평가도 있으나, 폐지 이후 보호 장치 없이 여성들이 노출된 상태가 심화된 것으로 여겨짐. 특히 위안소 폐지 후 성범죄 · 성병 감염률 등이 증가했다는 증언이 있음.
또한 일본 사회 내 성폭력 문제, 연합군 병사의 범죄 문제는 점령 기간 동안 계속 도덕적, 법적 이슈로 남았고, 이후 일본 내외의 역사 연구 및 피해자 증언 활동의 중요한 주제가 됨.
*출처: 링크
관련링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