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정서에 대하여 (2) / 석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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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일갈등타파연대 작성일 22-05-24 08:20본문
4. 좌파정권시기 없었던 소녀상 설치가 우파정권 시기 시작된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ㄱ. 일단 설치의 주체가 대한민국 정부가 아닙니다. 정대협을 비롯한 일부 단체들입니다.
ㄴ. 국제협약상 문제가 있습니다.
비엔나 협약 제22조는 "각국 정부는 외국 공관의 안녕을 방해하거나 품위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할 특별한 책무가 있다"
ㄷ. 도로교통법의 위반이기도 합니다.
ㄹ. 관리상의 문제도 있습니다. 추도상징이 노천에 있음으로써 비둘기배설물을 뒤집어쓰고 있으므로 적절한 추도시설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토템의 상징화가 된다는 점에서도 반대합니다.
5. 소녀상 설치 및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단체의 이념편향성도 문제입니다. 이는 좌파정권기와 우파정권기에 활동성향 차이로 나타납니다.
2011년 12월 정대협, ‘김 국방위원장 서거라는 급작스러운 비보에 북녘 동포들에게 깊은 애도를 전한다’는 조전(弔電) 북측 전달
윤미향 상임대표의 남편, 1994년 남매 간첩단 사건으로 징역 4년을 선고 받은 김삼석 씨
손미희 대외협력위원장 남편 한충목 씨, 맥아더 동상 철거집회 등 각종 反美투쟁 주도하다 실형
손미희 대외협력위원장은 40여 차례 訪北, 통진당 해산 결정 반대 시위, 김정일 조문 주장
정대협 간부들 중 일부는 정권 퇴진, “박근혜 여성대통령 자격 없다”는 대국민 호소문 발표 등 시국활동에 적극 참여.
위안부단체의 사드 반대 시위 및 반미 시위 참가.
6. 같은 위안부 단체이지만 보상금을 수령한 무궁화할머니회에 대한 정대협의 공격행위로 위안부 단체가 둘로 갈라진 사태에 대해 정대협의 순수성은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1997년 일본 정부가 민간의 성금을 모아 마련한 '아시아여성기금'을 받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통장 계좌를 수시로 확인하고 전화로 공갈 협박을 한 부분, 아시아여성기금'을 받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돈 몇 푼에 민족적 자존심을 팔아먹은 화냥년"이라는 표현'으로 비난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언론에 기록이 남겨져 있습니다.
초기 정대협에서 활동했던 한 여성 활동가는 '정대협이 1997년 '아시아여성기금'이 시행되자 자신들이 할 일이 없어진다고 탄식하더라며, 과연 정대협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하는 단체가 맞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표시하기도 하였다'.는데 지금 그동안 위안부들을 지원하였던 일본의 시민사회가 등을 돌리고 이런 번복이 결국 혐한조류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7. 이러한 반일 프레임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시키고 마치 북한이 항일투쟁에 의해 건국되어 정통성이 있다는 것으로 좌파세력에 의해 여러 프로파간다를 통해 선전선동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북한정부 수립시 친일파의 실체도 알아야 합니다.
북괴 김일성 정권의 친일파 출신 주요인사
김영주 북한 부주석, 당시 서열2위, 김일성 동생 (일제강점기 헌병보조원)
장헌근 북한 임시인민위원회 사법부장, 당시 서열 10위 (일제강점기 중추원 참의)
강양욱 북한 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 당시 서열 11위 (일제시대 도의원)
정국은 북한 문화선정성 부부상 (아시히신문 서울지국 기자)
김정제 북한 보위성 부상 (일제강점기 양주군수)
조일명 북한 문화선정성 부상 (친일단체 '대화숙' 출신, 학도병 지원유세 주도)
홍명희 북한 부수상 (일제강점기 임전대책협의회 가입 활동)
이활 북한 초대 공군사령관 (일제강점기 육군 항공대 소속)
허민국 북한 인민군 9사단장 (일제강점기 육군 항공대 소속)
강치우 북한 인민군 기술 부사단장 (일제강점기 육군 항공대 소속)
최승희 일제하 친일단체 예술인 총연맹 회원
김달삼 조선노동당 제주 4.3 사건 주동자 (일본군 소위)
박팔양 북한 노동신문 창간발기인, 노동신문 편집부장 (일제 만선일보 편집부장)
한낙규 북한 김일성대 교수 (일제강점기 검찰총장)
정준택 북한 행정10국 산업국장 (일제강점기 광산지배인 출신, 일본군 오장 근무)
한희진 북한 임시인민위원회 교통국장 (일제강점기 함흥철도 국장)
이승엽 남로당 서열 2위, 월북후 빨치산 유격투쟁 지도 (일제 강점기 식량수탈기관인 '식량영단' 이사)
체신상 북한 소련대사 (일제 강점기 식량수탈기관인 '식량연단' 상임간사)
8.야스쿠니 신사참배는 어떻게 볼 것인가..
야스쿠니 신사는 위령종교시설입니다. 신토사상에 바탕하여 19세기부터 존재하였습니다. 미국이나 우리와 같은 국립묘지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그래서 조선인이나 대만인의 이름도 올라가 있습니다. 한번 이름을 올리면 분리할 수 없다는 일본 신도의 특수성이 있어서 일본정부도 5번이나 법인화하여 통재하려 했지만 안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패전후 일본 자민당도 전몰자 위령의식할 때 정교분리를 위해 법을 만들려 하였는데 유족회와 신토단체가 반대하여서 지금까지 유지되었습니다.
종교와 사상이 다른 부분은 거기에 맞게 전몰장병 국립묘지나 위령시설을 국가가 적절한 방식으로 운영하란 식으로 우리정부가 일본정부에 주장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며 또 우리 정부도 계속 그걸 요구하여 왔습니다. 이 부분은 일본정부에서 피해국에 충분한 설명과 대안을 합리적으로 제시하는 것으로 협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9. 외교의 불균형적 접근은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ㄱ.연평도 포격,천안함 격침,당포함 격침, 대한한공 공중폭파, 김포공항테러, 울진삼척 공격, 수많은 휴전선 기습공격에 의한 한미 장병 희생등에 대해 북한 김정은에게 적절한 사과를 요구하고 배상을 청구하였는지.
ㄴ. 러시아로부터 1921년 지유시참변으로 독립군을 집단 처형/학살한 죄 그리고 학살 생존자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하여 죽이거나 학대한 죄 , 대한항공 공중격추에 대해 러시아정부와 푸틴대통령에게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였는지.
ㄷ. 중국정부/시진핑로부터 한국전쟁 불법개입, 그리고 미세먼지, 한국기업에 대한 불공정 사례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였는지 이제는 다시금 돌아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설마 현정부는 시진핑이 무서워서 이를 요구 못하는건 아닌지요? 단한번도 근세이후 해외로 진출하지 못하고 자국민을 노예로 삼아 망해서 존재하지도 않은 명나라황제 제사지내며 비굴한 사대하며 유지된 이씨조선 수준의 외교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10 결언 : 2차 대전 종전후 수많은 국가가 독립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과 일본과 같은 관계는 유일합니다. 제가 학창 시절을 보낸 90년대와 2000년대 초만해도 극일이 주류였지 반일이 주류는 아니었습니다. 정치,경제,사회 어떠한 시각에서 본다고 하여도 일본은 미국과 함께 대한민국의 동맹이고 우방입니다.
대학다니던 김대중정부 시절 일본대중문화개방을 경험한 세대로써 지금 언론에서 사용중인 자극적인 반일유도가 결국 세대가 몇번은 바뀌었을 시간이 흐른 광복 73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분노와 원한을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확대 재상산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궁극적인 목적은 한일관계의 이간질을 통한 한미일 동맹 붕괴, 친중사대주의의 고착화와 전제봉건노예제 국가인 김씨조선왕조를 추종하는 정치세력의 유지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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