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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녀의 삶을 좌우한 ‘미우케(身請け)’와 ‘연기 만료(年季明け)’란? / 쿠로다 나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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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일갈등타파연대 작성일 26-10-06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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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계(苦界)에서 벗어나는 길인가, 또 다른 비극인가… 유녀의 삶을 좌우한 ‘미우케(身請け)’와 ‘연기 만료(年季明け)’란?
(글: 쿠로다 나오미)
빈곤 때문에 또는 빚을 갚기 위한 담보로 ‘고계(苦界)’라고 불리던 요시와라의 기루(妓楼)에 몸을 팔려온 유녀들. 이들은 기루에서 일하며 빚을 갚아야 했기 때문에, 길게는 10년에 이르는 연기(年季)가 끝날 때까지 요시와라를 떠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새장에 갇힌 새와 같은 삶을 살아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정해진 연기를 기다리지 않고 이 고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미우케(身請け)’.
손님이 유녀의 몸값(身代金)을 대신 지불하고 그녀를 자신의 아내나 첩으로 맞아들이는 것을 ‘미우케’라고 했다. 다만 이러한 미우케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유녀 가운데서도 극히 일부의 특별한 여성들뿐이었다.
 
1. 미우케 비용이 1,000냥을 넘기도! VIP만 가능했던 미우케 제도
2025년 대하드라마 《베라보~쓰타주에이카노유메바나시~》에서 고시바 후카가 연기한 마스바야의 고급 유녀 세가와를 미우케한 사람은 이치카와 하야토가 연기한 맹인 고리대금업자 도리야마 겐교(鳥山検校)였다.
그가 지불한 금액은 무려 1,400냥으로, 당시 에도 전체에서 화제가 될 정도였다고 한다.
왜 이렇게 거액이 필요했을까?
기루에 지불해야 하는 유녀의 몸값뿐만 아니라, 남아 있는 연기 동안 유녀가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수입에 대한 보상, 성대한 작별연회 비용, 그리고 동료 유녀나 하인, 유녀를 소개한 히키테차야(引手茶屋) 등에 지급하는 축의금까지 필요했기 때문이다.
유녀를 미우케하는 일은 오늘날로 치면 억만장자 정도가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던 셈이다.
 
2.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느니 죽음을 선택한 유녀도
그렇다면 이렇게 미우케된 유녀들은 과연 행복했을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았다.
미우케한 사람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요시와라를 벗어날 수는 있었지만, 결국 돈의 힘으로 자신을 사들인 사람에게 다시 몸을 판 것과 다르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일부 유녀들은 미우케를 거부하고,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신주(心中, 동반자살)를 선택하기도 했다.
 
3. 작가와 우키요에 화가들도 유녀를 미우케했다
히라가 겐나이(平賀源内) 등의 인정을 받아 10대에 책을 출판하고, 이후에도 희작가(戯作者)와 광가사(狂歌師)로 이름을 떨쳤던 오타 난포(大田南畝)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 역시 부모와 아내, 자녀가 있는 가정을 꾸리고 있었지만, 마스바야의 하급 유녀 미호자키(美保崎)에 깊이 빠져 그녀를 첩으로 미우케했다.
난포가 미호자키의 말투를 빌려 쓴 수필 《쇼로시고(松楼私語)》에는 ‘천금으로 몸을 속량할 때(千金 身を贖うの時)’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를 보면 그가 상당한 거액을 지불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미호자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병에 걸렸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
일류 우키요에 화가로 활동했던 히시카와 모로노부(菱川師宣)는 요시와라를 무대로 한 음서(艶本)와 춘화(枕絵)를 많이 그렸는데, 그의 첫 번째 아내 역시 유녀였다.
그녀 역시 일찍 세상을 떠났다.
모로노부는 한동안 독신으로 지냈지만, 말년에 다시 요시와라를 드나들면서 자신보다 22세 연하인 ‘오하루’와 친밀한 관계가 되었고, 그녀를 다시 미우케했다.
이 여성이 훗날 모로노부의 대표작으로 유명해진 《미카에리 비진(見返り美人)》의 모델이었다고 전해진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그림으로 이 세상에 남길 수 있었으니, 모로노부에게도 화가로서 큰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4. 유녀와의 순수한 사랑도 존재했다
한편 유녀와의 관계가 대단한 연애와 결혼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
당시 인기 있는 화가이자 희작가였던 산토 교덴(山東京伝)은 19세 때 오기야(扇屋)에서 만난 기쿠조노(菊園)를 계속 찾아갔고, 그녀의 연기(기한)가 끝나기를 기다린 뒤 아내로 맞았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현숙한 부인’이라는 평을 받았던 기쿠조노는 불과 30세에 세상을 떠났다.
이후 작가로서 최고의 명성을 얻은 교덴은 다시 요시와라에서 친분을 쌓은 고급 유녀 다마노이(玉の井)를 미우케했다.
당시 교덴은 40세로, 한창 원숙한 나이였다. 다마노이는 그보다 17세 연하였지만 두 사람은 매우 다정하게 지냈으며, 교덴은 이 결혼을 계기로 요시와라에 다니는 일도 그만두었다.
끝까지 자신의 원칙을 지켰다는 점에서, 진지하고 한결같았던 교덴다운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결혼 역시 교덴이 세상을 떠나면서 끝났다.
이후 정신적으로 병을 앓게 된 다마노이는 광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5. 인생에 휘둘렸던 유녀들, 그들에게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이었을까
‘미우케’도 ‘연기 만료’도 유녀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삶의 부조리였다.
게다가 많은 유녀들이 병을 앓았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에게 비록 짧은 순간이라도 행복한 날들이 있었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대하드라마에는 수많은 유녀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가혹한 삶 속에도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드라마를 바라본다면, 그들의 이야기가 더욱 깊이 다가오지 않을까?
 
*아이캐치 이미지: 《산토 교덴의 미세(山東京伝の見世)》, 우타가와 도요쿠니(歌川豊国), ColBase
참고문헌
* 《요시와라 사전(吉原事典)》, 아사히신문출판
* 《일본대백과전서》, 쇼가쿠칸
* 《세계대백과사전》, 쇼가쿠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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