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 자유주의 페미니즘에서 레디컬 페미로, 그리고 핑크·레인보우 캐피탈리즘의 함정 / Ain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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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일갈등타파연대 작성일 25-08-28 01:46본문
[문화비평] 자유주의 페미니즘에서 레디컬 페미니즘으로, 그리고 핑크●레인보우 캐피탈리즘의 함정
by Ainstein (Institute for the Dissolution of the Nicaea System : IDNS)
오늘날 페미니즘의 궤적을 추적하다 보면, 그것이 단순히 사상의 흐름이 아니라 시장과 권력의 구조적 재편에 따라 궤적을 바꾸는 정치적 장치였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그 성취는 곧 시장과 자본이 여성 주체를 새로운 소비자, 새로운 노동력으로 흡수할 수 있는 조건이기도 했다.
∎ 레디컬 페미니즘은 이 제도적 평등이 실제 권력의 해체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비판하며, 가부장제의 근본 구조를 겨냥했다.
가족 제도, 성적 관계, 재생산 노동을 권력의 핵심 장치로 간주하며,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개혁’에 맞서 ‘혁명’을 주창한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급진적 언어는 오늘날 윤리적 소비, 안전 담론, 규제 메커니즘 속에서 국가와 자본에 재흡수되었다.
피해자 중심주의, 성노동 규제, 포르노 금지 등 담론은 ‘해방의 언어’를 빌려온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감시·규제 사회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 그런데 이 과정에서 눈에 띄는 현상이 있다. 바로 레디컬 페미니즘의 경직성과 배제성을 마르크스주의의 유산 탓으로 돌리는 움직임이다.
이는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멀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언제나 여성 억압을 자본주의적 착취 구조와 결합해 분석했으며, 성 억압을 계급 문제와 함께 파악하려 했다.
성을 계급보다 우위에 놓는 사고는 오히려 레디컬 페미니즘의 산물이다.
그러나 오늘날 ‘운동의 폐해’를 모두 ‘마르크스주의의 그림자’로 환원하는 것은, 불편한 진실—즉 자본이 해방 담론을 포섭·관리하는 방식—을 감추려는 집단적 자기합리화일 뿐이다.
∎ 핑크 혹은 레인보우 캐피탈리즘은 바로 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드러낸다. 기업은 페미니즘과 퀴어 담론을 마케팅의 장식으로 포섭한다.
친여성 마케팅, 여성할당제, 여성 임원 확대 캠페인, ESG(성평등) 젠더 지표는 모두 해방의 언어를 소비의 언어로 전환한 사례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애초부터 이 흐름과 친화적이었고, 레디컬 페미니즘조차 ‘윤리와 안전’이라는 말로 시장 관리의 언어 속에 흡수된다.
∎ 그 결과, 오늘날의 담론 지형은 기묘하게 분배된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시장 친화적 개혁주의로 자리 잡고,
레디컬 페미니즘은 윤리 규제 담론으로 기능하며,
마르크스주의는 폐해의 책임자로 낙인찍힌다.
∎ 진정한 권력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자본-국가-문화산업 복합체라는 삼각 구조 안에서, 해방의 언어를 소비재와 규제 장치로 전환하는 능력에 있다.
우리는 지금도 ‘페미니즘의 문제’를 논하면서 정작 자본주의적 포섭의 메커니즘은 제대로 논의하지 않는다.
∎ 오늘날의 문화정치가 보여주는 진실은 이렇다.
자유의 이름으로 불린 것들은 곧장 억압의 구조 속으로 회수된다.
혁명의 언어조차도 소비의 전시장에 걸린다.
그리고 그 모든 왜곡의 책임은, 가장 불편한 목소리—즉 마르크스주의—에게 떠넘겨진다.
이것이야말로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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