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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매춘자료] 수업시간에 위안부-매춘 관계 설명한 류석춘 교수 사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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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일갈등타파연대 작성일 22-11-26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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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와_성노동자 #위안부와_매춘 #류석춘과_위안부
[쟁점토론] 2022.11.23. 검찰(서울서부지법)이 2019년 수업 시간에 위안부와 매춘 관계를 설명한 류석춘 당시 연세대 교수에 징역 1년 6개월 구형했다. 이에 위안부에 대한 역사·정치·경제·군사·성담론 등 관련 분야의 팩트를 알아본다.

#위안부 (慰安婦, military prostitutes) (2)

■ 전시의 성 정책
■ 19세기 전시의 성정책
병사의 성병 방지를 위한 매춘의 국가 통제는 19세기 초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유럽 대륙과 영국으로 퍼졌다. 이 당시 나폴레옹 전쟁의 부산물로서 성병이 유럽에 퍼져 있었다. 그 후 프로이센은 일시 공창제도를 중단했지만 군 당국의 압력으로 1851년에 재개했다. 영국도 크림 전쟁에서 성병의 만연으로 공창제도를 도입했다. 영국은 1886년에 본국에서 공창제도를 철폐한 후에도 군의 이익을 위해 식민지에서는 이 제도를 온존시켰다.

북아메리카에서는 법제화에 이르지 못했지만, 남북전쟁 중에 북군이 남부 도시를 점령하면 북군의 지도자가 매춘 통제에 나서 1870년 세인트루이스에서 유럽형 공창제도가 공식적으로 채택되었다.

근대형 공창제도는 이후 일본에도 도입되었다.

후지메 유키는, 근대형 공창제도는 「군대 위안과 성병 관리를 기축으로 한 국가 관리 매춘의 체계」라고 말한다.

■ 제1차 세계대전 시 성 정책
제1차 세계대전 때 에티 루트(Ettie Annie Rout. 軍성병 예방 운동가)는 이집트 뉴질랜드 군대를 간호하기 위한 종군 여성자원봉사단체를 조직, 병으로 고생하는 병사들에게 "여자가 필요하다면 병이 없는 예쁜 여자를 주라"라고 말한 바 있다.

미군에서는, 병영 5마일 이내에서는 어떤 여성(매춘여성으로 간주)이라도 체포할 수 있고, 그 여성의 시민권을 정지할 수 있는 아메리칸 플랜이 추진되었다.

■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성 정책
하타 이쿠히코(秦郁彦)은 제2차 세계 대전 때의 전쟁터에서 성 정책을 "자유 연애형" "위안소형" "강간형"의 3가지 유형에 크게 나누고 각각 다음과 같이 그 특징을 해설하고 있다.

- 자유연애형
미국이나 영국은 「자유 연애형」으로 한다. 양국에서는 공창에서 사창 중심 시대에 들어선 것과 본국 여성들의 눈을 의식해 공창을 공개적으로 이용하지 못하고 현재의 소프랜드와 "원조 교제" 같은 자유연애 방식을 추진했다.

- 위안소형
일본과 독일이 대표적인 경우. 양국 모두 공창제도의 나라였는데, 전쟁터에서는 감독자가 경찰에서 군으로 대신했다. 위안소의 수(數)도 양국은 같았다.

- 강간형
강간 유형에 대해, 소련만이 2차 세계대전에서 국가나 군 관리들이 강간으로 "복수(보복)"를 장려했다.

■ 제2차 대전 때의 실태
수백의 위안소가 있었다고 하는 독일군과 일본군 이외에도 마찬가지로 공창제도하의 프랑스군에 공식 위안소 시스템이 있었다. 영·미군도 식민지에서는 군이 공인한 혹은 묵인한 위안소가 존재했고 일본군 위안소를 거치고 사용한 사례도 있다("군용 매춘부" 참조).

군의 방침과 무관하게 발생한 강간 사건은 소련 이외의 군대에서도 발생했다. 위안소를 설치한 독일군과 일본군에서도 강간 사건은 근절되지 않아 미국 병사에 의한 강간 사건은 종전 후에도 계속됐다("강간의 역사 전시의 강간" "오키나와 미군 소녀 폭행 사건" 참조). [J위키]

[사진] 독일병과 프랑스 브레스트의 매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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