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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공산당 입장 "일본군'위안부'에 강제는 없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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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일갈등타파연대 작성일 22-10-24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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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에 강제는 없었다고는?


 <문의> 일본군 「위안부」는 「공창」에서 강제는 없었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본 공산당의 견해를 알려주세요. (히로시마·일독자)


 <답> 김학순씨가 1991년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적으로 연행됐다고 실명으로 자칭을 올린 후 일본 정부의 태도가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일본은 1930년대부터 45년에 중국 침략전쟁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넓혀 각지에 일본군의 위안소를 만들었습니다. 많은 나라에서 강제로 혹은 속여 모인 소녀가 군인의 성폭력에 노출되었습니다.


 ‘위안부’ 문제는 구일본군이 직접 간접에 관여하는 가운데 발생한 것은 역사에서는 이미 결착되었습니다. 미야자와 내각 당시의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담화(93년)는 “당시의 군의 관여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을 깊게 상처 입은 문제”라고 인정했습니다. 「위안부」재판의 확정판결도 성노예로서의 사실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사과도 보상도 하지 않습니다. 강경파 세력은 “위안부는 없다” “강제는 없었다”고 외쳤습니다.


 일본 정부의 자세에는 국제사회로부터도 큰 비판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미 의회 하원은 2007년 일본 정부가 강제한 것을 인정하고 사과하도록 요구하는 '위안부' 결의를 채택했습니다. 그 후도 네덜란드, 캐나다, EU(유럽연합), 한국, 대만에서 결의가 채택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에서는 '강제는 없었다' 등이라는 것은 괜찮은 역사인식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원래 「공창제도」가 인신매매와 자유구속을 내용으로 하는 성노예제였습니다. 하물며 일본군 「위안부」의 경우는, 외출도 위안소에서의 사역을 거부할 자유도 없었습니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서 도망갈 수 없고, 전혀 군 전용의 성노예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문제는, 전후 65년을 거쳐도, 아직 해결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성의 인권을 침해한 중대 문제이며, 이 역사적 사실을 기본 인식으로서 「정부로서의 사과와 보상을 행하는 것이 급선무」(일본 공산당 제25회 대회 결의)입니다. 


 〔2010・2・27(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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