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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보고서] 조선인 '강제연행' 서사의 기원은 조선총련 박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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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일갈등타파연대 작성일 25-08-30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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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보고서] 조선인 '강제연행' 서사의 기원은 조선총련 박경식

by 한일갈등타파연대

1. 서론 ― 서사의 탄생과 권력

“강제연행(強制連行)”이라는 용어는 오늘날 한일 갈등의 가장 첨예한 역사 담론을 지칭하는 상징적 언어다. 그러나 이 개념은 일제 시기의 강제동원을 단순히 기술한 사실적 용어가 아니라, 특정 시기의 지식인, 특정 조건 속에서 형성된 ‘기억 서사(memory narrative)’이다.

본 분석서는 그 기원을 재일 조선인 역사 연구자 박경식(朴慶植, 1922~1998)의 저작과 활동에서 찾는다. 이를 통해 강제연행 서사가 학술, 정치, 정체성이 얽혀 생산된 담론임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박경식의 삶과 연구 배경

1922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난 박경식은 1929년 부모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대학 고등사범부와 도요대학(東洋大学) 사학과를 졸업한 뒤, 조선중고등학교와 조선대학교에서 교원으로 재직했다. 그는 방대한 자료 수집과 연구에 몰두했으며, 사후 그의 유산은 시가현립대학에 “박경식 문고”로 보관되고 있다.

박경식은 단순한 학자가 아니라 재일 조선인 지식인이었다. 즉, 일본 사회에서 차별받는 존재, 동시에 북한과의 관계 속에서 정치적 제약을 받는 위치에 있었다. 이 이중적 조건은 그의 역사 서술 방식과 연구 주제를 규정했다.

3. '강제연행' 개념의 제기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을 둘러싼 논쟁에서, 박경식은 식민지 노동 동원을 “모집–관알선–징용”의 차이를 무시하고 모두 “강제연행”으로 포괄하였다. 이는 법적·정치적 책임을 일본에 물리려는 논리적 장치였다.

그는 쇼가쿠칸(小学館) 『일본대백과전서』에서 “조선인 강제연행” 항목을 집필하며, “노예사냥과 같은 사례”와 “여자정신대=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기술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여자근로정신대(군수공장 노동)와 일본군‘위안부’를 혼용하는 혼란이 발생했다.

이 포괄적 서술은 사실의 정밀성을 간과했지만, 피해 서사의 도덕적 힘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4. 조총련과 기억의 정치

박경식은 조선총련(조총련) 내부에서 후각파로 분류되며, 주류 선각파와 대립했다. 주류파는 식민지 피해 연구를 억압하는 경향을 보였고, 박경식은 피해 사실 발굴을 집요하게 이어갔다. 그러나 외부에서는 그의 연구가 “북한과 조총련의 조직적 방침”에 따른 것이라는 오해를 받았다.

박경식의 작업은 주류파의 압력에 저항하는 자율적 연구의 성격을 띠고는 있었으나, 동시에 그는 조선대학교 교원으로서 북한의 대외 선전 기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 긴장 속에서 그의 ‘강제연행’ 서술은 자리 잡았다.

5. 북한 기조와 박경식 서술의 교차

∙ 정치적 제약: 조총련 소속 학교 교원으로서 박경식의 작업은 북한의 대외 전략, 특히 ‘식민지 피해의 국제화’라는 기조에 연동될 수밖에 없었다.

∙ 강제연행의 보편화: 모집–관알선–징용의 구분을 제거하고 단일한 “강제”로 묶은 그의 서술은 북한의 대일 외교 선전전과 호응했다.

∙ 여성 피해의 총체화: 근로정신대와 위안부의 혼용은 “식민지 여성=위안부”라는 총체적 피해 프레임을 형성했으며, 이는 북한의 선전 서사와 맞물렸다.

∙ 이중적 성격: 따라서 그의 연구는 재일 지식인의 자율적 역사화 시도이자, 민족적 기조와 교차한 정치적 산물이었다.

6. 서사에 대한 비판과 반론

일본 우익은 그의 서술을 “좌파 일본인과 재일 민족주의자들의 합작품”으로 규정하며 외교 문제를 야기했다고 비난했다. 한국 내 일부 연구기관은 “임금 격차는 민족 차별이 아니라 숙련도 차이”라며 반박했다.

그럼에도 박경식의 작업은 단순한 날조가 아니었다. 피해자 증언과 자료 발굴은 실제로 존재했으나, 단지 그것을 어떻게 개념화하고, 어떤 정치적 맥락에서 배치했는가가 쟁점이었다.

7. '강제연행' 담론의 확산과 영향

박경식의 저작 『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은 일본 시민운동, 한국 지식사회, 그리고 국제무대(유엔 인권)에까지 파급되었다. 그의 서술은 위안부 문제와 결합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한일 간 기억 전쟁의 근원 서사가 되었다.

8. 결론 ― 기억 서사의 정치성과 현재성

박경식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역사화한 선구자이자, 동시에 북한의 대외 전략과 교차하면서 정치화된 담론을 만든 인물이기도 했다. “강제연행”은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있지만, 그것은 동시에 권력, 정체성, 저항이 얽힌 '기억 동원'의 산물이었다.

오늘날 우리의 과제는 단순히 “강제성이 있었는가, 없었는가”라는 이분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서사가 어떻게 형성되고, 어떤 정치적 맥락 속에서 작동했는가를 비판적으로 직시하는 것이다. 이는 피해자 기억을 존중하면서도, 국가주의적·민족주의적 동원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는 새로운 역사 인식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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