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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이화여대 명예교수 윤정옥·이효재는 잘못된 위안부 연구를 진정성 있게 고백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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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일갈등타파연대 작성일 20-12-10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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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이화여대 명예교수 윤정옥·이효재는 잘못된 위안부 연구를 진정성 있게 고백해야 합니다!​

 

윤정옥(95세)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최초로 세상에 알리고 이를 위해 몸소 뛰어온 사람이자 이효재(96세) 교수와 함께 1990년 창립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현 정의연)의 창단멤버입니다.​

 

윤정옥 교수가 위안부 지원활동을 벌이게 된 것은 1982년 ‘요시다 세이지’라는 일본인이 일제시대 제주지역에서 200여명의 여성을 ‘강제로 연행’했다는 내용의 증언집을 1982년 출판하면서 <아사히 신문>이 이를 토대로 1990년대 초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을 인정한 기사들이 근거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을 기반으로 한 박세길 작가가 『다시쓰는 한국현대사』(돌베게, 1988)에서 ““수 십 만 명의 조선의 젊은 여성을 정신대라는 이름 아래 전장으로 끌고가 일본인 병사를 위한 위안부로 삼았고, 중학생은 말한 것도 없고 나이 어린 국민학생까지 위험한 군사시설 공사에 내모는 등 일제의 조선 민중에 대한 침탈행위는 극에 달하고 있었다.”고 혼용한 점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

 

이후 윤정옥·이효재 교수는 위안부 연구 및 활동에 대한 성과를 인정받아 1994년 12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에서 인권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당시 정대협 대표였던 윤 교수는 수상 소감에서 “13세에서 많으면 17세까지 10-20만 명의 (조선)여성들이 정신대로 끌려갔다. 그리고 오래 있었던 여자는 8년을 있었다. 좁은, 철창이 있는 방에서 하루에 30명을 받아야 했고, 주말에는 50명의 일본군을 받아야 했다”고 말합니다. ​

 

따라서 KNCC 인권상 수상으로 국내에서 권위를 인정받은 윤정옥·이효재 교수의 잘못 꿰어진 첫 단추인 위안부 문제는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

 

하나는, 기본적으로 일제의 공창제 아래 성노동에 종사한 위안부를 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 군수공장에서 일한 여자근로정신대(정신대)로 혼동한 것입니다. 그 결과 정신대에서 노동한 것으로 알려진 일본과 조선의 여성을 합친 약 20만 명이 졸지에 조선여성 위안부의 수치로 둔갑해 교과서 등에 인용되고 있습니다. ​

 

다른 하나는, 위안부 문제의 기원이 된 요시다 세이지의 출판물이 허위사실임이 밝혀져 <아사히 신문>이 관련 기사를 취소한 것은 2014년임에도 불구하고, 1990년 착오로 설립된 정대협(현 정의연)이 요시다 세이지의 허위 진술 이전과 이후에도 여전히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입장 변화가 없어야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

 

유엔에서도 윤정옥·이효재 교수의 이러한 주장은 비중 있게 발표됩니다. 예컨대 위안부 '강제연행설'은 1996년 유엔 쿠마라스와미 보고서에 반영됩니다. 또한 2013년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여성가족부 장관 조윤선은 “(일본군 위안부는) 한때 1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던 이들이었으나 현재까지 살아있는 분들은 56명에 불과합니다.”라고 말합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은 280만 명 수준이었으며, 일본이 공창제 아래 1937년 위안소를 공식 설치할 때 병사 150명 당 1명의 위안부를 두는 방침이었습니다. 고로 일본군을 상대한 일본인, 중국인, 조선인 등 위안부의 총 수는 1만 8,000명 정도로 추정됩니다. 민족별 구성은 일본인 40%, 현지인 30%, 조선인이 20%, 기타 10%로 추산되며 따라서 조선인 위안부는 대체로 ‘3,500명’ 정도였습니다. ​

 

조선인 위안부는 윤정옥 교수의 10만~20만 명이란 수치에서 보듯 실제의 30배에서 60배로 부풀려졌고, 또한 민간의 취업사기와 인신매매로 일반화 과장됐음에도 불구하고, 20만 명설은 변함없이 기정사실화 증폭되고 있습니다. 이는 다큐형 위안부 영화『귀향』의 20만 명 설에 이어『강철비』에서 외교안보 수석 '곽철우'가 43만 위안부 중에서 23만 명이 사망했다고 브리핑할 정도로 크게 왜곡되고 있습니다.​

 

윤정옥·이효재 교수에게 묻습니다. ​

 

1. 반일동상진실규명공대위는 귀하의 얼마 남지 않은 생에 있어 역사적 팩트를 잘못 인식했음을 인정하고 자성하기를 권고합니다. 위안부와 정신대를 혼동한 자신의 과오를 진정성 있게 시인할 생각이 없습니까?​

 

2. 귀하는 일제의 전쟁 오판에 의해 강제 동원된 280만 명의 조선인 출신을 포함한 일본군이, 내일을 모르는 죽음의 총알받이 앞에서 조선 여성들을 ‘성노예’로 부릴 만큼 한가했다고 생각하십니까?​

 

3. 지난 일제하 역사적 사안을 70여 년이 지난 오늘 새삼 이슈화 하는 것이 오늘 한국 사회에서 정치권력의 내수용 반일 프로파간다 및 성거래 금지주의 정책과 무관하다고 생각하십니까?​

 

2020.8.25.​

 

‘역사 제자리 찾기’ 직접행동 집단지성

반일동상진실규명공대위 / 여성가족부해체추진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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