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일제 과거사 연대의 가면 뒤에서 작동하는 지정학적 계산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일갈등타파연대 작성일 26-08-29 13:13본문
[논단] 일제 과거사 연대의 가면 뒤에서 작동하는 지정학적 계산
최근 서울 주한중국문화원에서 열린 한·중 공동 제작 위안부 다큐멘터리 ‘5, 기억하고 기록하라’의 시사회는 단순한 문화·예술적 교류의 범주를 넘어선다. 중국 CRI(국제방송) 등 국가급 미디어가 전면에 나서고, 국내 주요 채널의 편성과 맞물려 진행된 이 행사는 한·중 양국이 ‘일제하 과거사’라는 역사적 상흔을 매개로 정치·외교적 연대의 상징적 의미를 강화하는 장면으로 읽힐 수 있다.
한일갈등타파연대연구소는 최근 이처럼 가속화되는 한·중 간 과거사 연대 움직임이 대한민국 외교 안보 지형에 던지는 함의를 직시하며,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1. 국가 간 배상 포기와 민간 압박의 이중 트랙
중국은 1972년 중일공동성명을 통해 국가 차원의 대일 전쟁배상 청구권을 공식 포기했다. 그러나 강제동원과 위안부 등 민간 차원의 개별 청구와 소송 등에 대해서는, 외교적 필요에 따라 일정 부분 용인하거나 활용해 왔다.
국가 간의 외교적 명분은 유지하면서, 민간 영역의 소송과 여론전을 통해 일본에 지속적인 외교적 압박을 가하는 이중 트랙 전략이다. 최근 한국 내에서 전개되는 일련의 과거사 및 기지촌 여성 관련 소송 국면과 이러한 중국의 대일 전선이 묘하게 궤를 같이하는 배경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2. 가해의 역사에 눈감은 '내로남불'식 프로파간다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한다는 명분 뒤에는 철저한 진영 논리와 위선이 도사리고 있다. 6.25 전쟁 당시 중공군과 북한군은 점령지 민심 수습과 군기 유지를 위해 포고령과 군법으로 성범죄를 엄벌한다는 방침을 내걸었으나, 전쟁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피해와 성폭력 문제는 북한·중국 체제 내부에서 충분히 공개적으로 규명되지 못했으며, 오랫동안 공식 역사 서술에서도 주변화되었다. 나아가 1945년 해방 직후 북한 지역에 진주했던 소련군의 끔찍한 만행 역시 사회주의 ‘해방군’이라는 신화 뒤에 공식 기억에서 크게 배제되었다.
그럼에도 오늘날 이들이 주도하는 역사 담론은 일본과 미국의 책임을 적극 부각하는 반면, 공산권 내부의 인권 침해와 전쟁범죄에는 상대적으로 침묵하는 이중 기준을 보여준다. 자신들의 원죄는 축소하거나 은폐하면서, 상대방의 치부만을 극대화하여 정치적 지렛대로 삼는 전형적인 이중 기준의 역사 선전 전략이라 할 수 있다.
3. 트럼프 시대의 동맹 흔들기와 한국 외교의 중대 우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나토 압박과 강력한 관세 정책으로 기존의 전통적 동맹 질서를 거세게 흔들고 있는 거시적 전환기 속에서, 한국 정부가 외교적 공간을 모색하는 현실적 고민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한미동맹이라는 안보의 근간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일제하 과거사라는 공통분모를 고리로 중국 주류 미디어와 손을 잡고 결과적으로 미국과 일본을 겨냥한 지정학적 서사에 편승하는 인상을 줄 위험이 있다. 외교적 유연성을 확보한다는 명분이 자칫 한미동맹의 결속력을 갉아먹고, 대한민국을 반일·반미의 이중 프레임 속에 스스로 가두는 외교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한국 외교가 경계해야 할 것은 감정적 연대가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진 거대한 지정학적 계산이다. 과거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사가 중국의 전략 자산으로 활용되는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굳건한 토대 위에서 실사구시의 원칙과 냉철한 국익을 우선하는 외교적 중심 잡기가 절실한 시점이다.
2026년 8월 29일
한일갈등타파연대연구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